오피니언 사설

미국, ‘동네 판결’로 경쟁기업 죽이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미국 버지니아주 동부법원이 코오롱에 대해 1조원이 넘는 배상 판결을 내린 데 이어 아라미드 섬유 소재 ‘헤라크론’의 전 세계 생산 및 판매를 향후 20년간 금지한 것이 월권 판결 논란을 부르고 있다. 미국의 일개 지방 법원이 전 세계 범위의 생산·판매까지 금지시킨 것은 관할권을 벗어난 자의적 판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기에다 버지니아 리치먼드는 원고인 듀폰의 최대 사업장이며, 아라미드 섬유의 생산 거점이다. 미국의 경제난과 애국주의·보호무역주의 등이 버무려져 상궤를 벗어난 ‘동네 판결’이 나온 게 아닌지 의문을 떨칠 수 없다.

 해당 재판장이 아라미드 섬유 소송에 관여한 법률회사에 21년 동안 변호사로 재직했던 대목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재판 도중 자주 졸았다’는 이유 등으로 쫓겨나기도 한 비(非)전문적 배심원단은 판결의 공정성에 의문을 던진다. 이미 카이스트에서 독자 개발한 특허로 2006년부터 양산한 ‘헤라크론’을, 2008년 듀폰 퇴직자를 컨설턴트로 채용했다는 이유로 “영업 비밀 침해”라 판정한 것은 시간의 흐름을 잘못 짚은 게 아닌지 의심쩍다. 또한 미 법원은 지난 30년간의 아라미드 연구개발·마케팅 비용을 다 물어내라는 듀폰의 청구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였다. 아무리 미 법원이 징벌적 배상을 자주 물린다고 해도, 실제 손해액 산정은 외면한 채 그동안 대미 수출액의 300배가 넘는 배상금을 물린 것은 도를 넘는 처사다.

 이번 판결은 코오롱이라는 일개 회사에 그치는 사안이 아니다. 앞으로 미 동네 법원의 편파 판결로 얼마나 많은 희생양이 나올지 모른다. 코오롱이 즉각 항소 입장을 밝혔지만, 우리 정부도 손 놓고 지켜볼 때가 아니다. 최근 미 국민들조차 55%가 ‘삼성전자-애플’의 특허 판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할 정도다. 미국이 ‘동네 판결’로 외국 경쟁기업을 죽이는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현격히 어긋난 판결에 대해 외교적 차원에서 강력 항의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방안까지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