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스마트폰시장 ‘애플세’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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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애플 간 ‘세기의 전쟁’이 달아올랐다.

 한국에서 삼성이 판정승을 거둔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애플은 앞마당에서 큰 승리를 거뒀다.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 북부지방법원에서 배심원단은 24일(현지시간) “삼성이 애플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디자인 특허를 고의로 침해했다”고 평결했다. 삼성이 애플에 10억4934만 달러(약 1조1910억원)를 배상하라는 결정도 내렸다. 법원은 애플 본사에서 15㎞도 떨어지지 않은 새너제이에 있다.

 삼성·애플 간 경쟁은 단순한 특허소송전이 아니다. 세계시장에서 정보기술(IT) 최강 자리를 놓고 벌이는 헤게모니(패권) 싸움이다. 게다가 두 회사만의 각축전이 아니다. 구글·모토로라·HTC·LG전자 등 세계 내로라하는 IT 기업들이 연관돼 있다. 블룸버그는 “삼성과 애플뿐 아니라 세계 시장을 놓고 벌이는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의 주도권 다툼”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가디언은 “애플 동네(hometown)의 배심원들은 구글의 안드로이드 시스템을 파괴할 수 있는 중요한 탄환을 애플에 줬다”고 보도했다. 그런 와중에 안드로이드의 대표인 삼성이 이번 평결의 과녁이 됐다는 게 외신들 분석이다.

 이번 평결 가운데에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늘리거나 줄이는 사용환경(UI) 기술에 대해서도 특허를 인정한 대목이 있다. 삼성뿐 아니라 LG전자·모토로라 등 이 기술을 쓰는 안드로이드 진영 전체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시장조사업체 IDC의 알 힐와 애널리스트는 “비싼 ‘애플세(apple tax)’가 생겨 앞으로 스마트폰은 더 비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플은 삼성에 스마트폰 한 대당 30달러의 특허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IT 전문 온라인매체인 씨넷은 “구글이 가장 큰 패배자”라며 “삼성을 비롯한 안드로이드 제조업체는 돈 낼 준비를 하라”고 전했다.

 향후 애플은 배상 평결을 얻어낸 삼성의 갤럭시S 계열 스마트폰에 대한 판매금지를 신청할 예정이다. 또 갤럭시S2와 갤럭시S3에 대해서도 소송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일부에서는 애플이 구글에도 소송을 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스티브 잡스 전기에는 “내 마지막 목숨까지, 애플의 400억 달러 은행 잔고를 모두 털어서라도 제품을 훔쳐간 안드로이드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잡스의 유지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결국 이번 특허 전쟁은 애플과 구글의 대결에서 최종 결판이 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은 중장기적으로 ‘애플 아트(예술적 감성이 뛰어난 애플)’를 넘어설 제품을 내놓아야 할 숙제를 떠안게 됐다. 2006년 ‘보르도 디자인’으로 세계 TV 시장의 주도권을 쥐었던 사례를 되짚어볼 필요가 생겼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퀄컴의 ‘기술’을 넘어서니 애플의 ‘감성’이 또 장벽으로 나타났다”며 “기술과 감성을 융합한 혁신 제품을 만들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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