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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비통해서 … 검은 넥타이 매고 찬 죽 먹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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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광복회 사무실 독립선언서 앞에 선 박유철 광복회장. 29일 경술국치일 102주년을 결연한 마음으로 맞자고 강조했다. [사진 광복회]

1907년 일제는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주장하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과 3대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는 서울 남산 통감관저에서 조약에 서명했다. 조선을 일본에 강제로 병합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군이 불법 진주한 강압적 상황에서 순종 황제는 한일 병합 척유를 공식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경술년 8월 29일 일어난 경술국치다.

 광복회는 오는 29일 경술국치 102주년을 맞아 조촐하지만 엄숙한 행사를 한다. 회관 앞에 조기를 걸고 낮 12시 직원 전부가 검은 넥타이를 맨 채 찬 죽을 먹는다. 전국 12개 지부, 89개 지회에서 1300여 명 광복회 회원이 참여한다.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광복회 사무실에서 박유철(74) 광복회장을 만났다. “부끄러운 날입니다. 자랑스런 날이 못됩니다. 하지만 절대 잊어선 안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박 회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었던 독립운동가 백암 박은식 선생의 손자다. “제가 태어나기 전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를 통해 임시정부에서 경술국치일이면 찬 밥을 먹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뜻을 살려 광복회 회장으로 취임한 지난해부터 행사를 열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술국치일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에게 건국 기념일, 3·1 독립운동 기념일 만큼 중요한 날이었다. 국치일이면 파업, 투서 사건이 벌어졌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 떠돌던 독립운동가들은 ‘조상의 피로써 지킨 옛집은 백주(白晝)에 남에게 빼앗기고서 처량히 사방에 표랑하노니…천고의 치욕이 예서 더할까, 후손을 위하여 눈물 뿌려라’는 가사의 ‘국치추념가’를 불렀다. 투옥된 사람들도 동맹 단식으로 이 날을 되새겼다.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선배들은 국치일이면 찬 밥을 먹고 잠도 자지 않으며 독립의 뜻을 새겼다고 합니다. 강압적으로 맺은 조약으로 우리 국민은 핍박 받고 비참하게 당했습니다. 이런 역사를 다시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날 오전 박 회장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정부 규탄시위를 하고 왔다. 그는 “우리 민족은 일왕의 통치로 피나는 눈물의 역사를 겪었다. 일왕이 당연히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일본 우파 정치인이 우리의 아픈 과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상황이 아쉽다”고 했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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