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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내한

중앙일보

입력

기돈 크레머(54) 는 소련 정부로부터 해외 연주여행의 자유를 허락받은 최초의 연주자다.

그가 베토벤 협주곡을 연주할 때면 언제나 러시아 작곡가 알프레드 슈니트케(1934~99) 가 작곡한 카덴차를 사용한다.

베토벤은 물론 바흐.브람스.베르크.쇼스타코비치 등 바이올린 음악사를 관통하는 다양한 양식을 엮은 '폴리스타일' 로 흥미를 자아내는 곡이다.

슈니트케의 이름이 서방에 알려진 것은 크레머가 네빌 마리너의 지휘로 필립스 레이블에서 녹음한 이 카덴차 덕분이다. 슈니트케의 바이올린협주곡 제1~4번은 크레머를 위해 작곡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곡가에게 훌륭한 연주자를 만나는 것만큼 큰 행운도 없다. 77년 슈니트케의 첫 서방 나들이도 크레머가 주선했다.

크레머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슈니트케의 '콘체르토 그로소' 를 연주할 때 작곡자는 백스테이지에서 하프시코드를 연주했다.

크레머는 슈니트케뿐만 아니라 에디슨 데니소프.소피아 구바이둘리나.아르보 패르트 등 비교적 덜 알려진 러시아와 동구권 작곡가의 작품들을 소개하는가 하면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을 클래식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크레머의 연주단인 크레머라타 발티카는 81년 실내악 축제인 로켄하우스 페스티벌을 창설할 만큼 실내악에도 남다른 열성을 보여온 그가 만들어낸 '음악적 분신' 이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사계(四季) 그리고 사계' .같은 제목으로 논서치 레이블에서 음반으로도 발매된 이 프로그램은 팝 클래식으로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비발디의 '사계' 를 새로운 음악언어로 번역해내는 작업이다.

크레머는 10여년전부터 '사계 프로젝트' 를 구상했다. 비발디의 원곡과 같은 악기편성으로 작곡하되 작곡자의 독특한 스타일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피아졸라의 작품 중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겨울' 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그는 작곡가 레오니드 데샤트니코프의 도움으로 피아졸라의 탱고에 비발디의 '사계' 를 녹여내는 데 성공했다.

비발디의 '봄' 에 이어 피아졸라의 '여름' 과 비발디의 '여름' 이 교차한다. 이렇게 비발디와 피아졸라가 뒤섞이며 연주된다. '탱고풍의 비발디' '비발디와 피아졸라의 대화' 라고나 할까.

또 라스카토프가 편곡한 차이코프스키의 12개의 피아노 소품 '사계' 를 현악합주용으로 편곡한 '사계 다이제스트' 가 연주된다. 각각 이탈리아.러시아.아르헨티나 작곡가가 음악으로 그려낸 북반구와 남반구, 18세기와 20세기의 사계절의 풍경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폴리스타일 음악' 의 의미를 깨우쳐준 슈니트케의 '바이올린.비올라.첼로와 현악합주를 위한 협주곡' 도 국내 초연이다. 22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만~8만원.

23일 부산 문화회관에서는 비발디의 '사계' 와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다이제스트' , 슈베르트의 '현악 5중주 C장조' 를 들려준다.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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