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한·일 마이너스 통장 닫으면 경제도 마이너스 효과 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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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갈등의 불똥이 경제로 튀었다. 급할 때 한국이 일본에서 외화를 조달할 수 있는 ‘마이너스 통장’을 일본이 닫아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설령 이게 현실화해도 경제에 큰 파장을 줄 가능성은 작다. 한국의 외환 방어막이 두터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한·일 간 경제협력에 균열이 생기는 상징적 신호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한·일 양국은 외교적으로 거친 말을 쏟아내더라도 이를 경제 문제로 연결하지는 않았다. 일본은 이미 이달 말로 예정된 한·일 재무장관 회담도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그래서 한·일 경제 교류의 일선에 있는 기업의 신경은 곤두서 있다.

 발단은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일본 관방장관의 15일 발언이었다. 그는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에 대해 “앞으로 여러 검토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문제의 소관은 재무성이지만 그는 일본 정부의 대변인이다. 통화스와프는 비상시에 양국이 외환을 급히 융통할 수 있는 제도다. 일종의 외환 비상금이자 마이너스 통장이다.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은 10월이 만기다. 규모는 700억 달러다. 만약 일본이 10월에 계약을 갱신하지 않으면 양국 스와프 규모는 700억 달러에서 130억 달러로 줄어들게 된다. 130억 달러는 한·중·일과 동남아 국가가 맺은 통화교환협정(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만기가 1년 이상 남았다. 제도는 있었지만 지금까지 한·일이 실제로 통화스와프를 한 적은 없다.

  기획재정부는 정중동(靜中動)이다. 공식화하거나 소리 내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재정부 관계자는 “일본으로부터 아무런 통보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통화스와프는 한국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일본도 수혜를 보는 제도”라며 “만기 시점인 10월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시장은 차분했다. 16일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치는 달러당 1134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전날보다 원화가치가 달러당 3.4원 내렸다. 뒤숭숭한 한·일 간 분위기도 반영됐지만, 미국의 경제지표가 개선되면서 세계적으로 달러 강세가 나타난 영향이 컸다. 다른 아시아 국가 통화도 전반적으로 약세였다. 엔화 대비 원화 가치는 전날보다 0.58원 내린 100엔당 1430.52원 선에서 형성됐다.

 시장이 잠잠했던 건 한국의 외환 사정이 넉넉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143억5000만 달러다. 세계 7위 수준이다. 2008년 금융위기(2012억 달러)에 비하면 1000억 달러 이상 불어났다.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중도 2008년 74.5%에서 지난해 말 44% 수준으로 내려왔다. 제도적인 장치도 확충됐다. 급격한 자본 유출입을 막기 위해 선물환 거래 규제가 강화됐고, 외화부채에 대해선 외화건전성부담금도 물리고 있다. 일본 자금 외에도 외화 비상금은 적지 않다. 한·중 스와프 자금 560억 달러, CMI 관련 자금 384억 달러를 쓸 수 있다.

하준경(경제학) 한양대 교수는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규모는 우리 경제 크기로 볼 때 큰 의미가 없는 수준”이라며 “실질적 파급력이 있는 한·미 간 통화스와프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성태윤(경제학) 연세대 교수는 “한·일 스와프는 동북아 협력에 초점을 둔 상징적 제도”라며 “다만 이런 문제가 반복되면 경제 심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당장 몸이 단 곳은 기업이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업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곳은 관광·여행 업계다. 국내 최대 여행사인 하나투어는 16일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여행객 수요 변화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국에 들어온 일본인 관광객 수는 328만 명으로 전체 관광객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대상 등 식품업계도 일본의 불매운동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편 통상교섭본부는 21일 중국 칭다오(靑島)에서 열리기로 돼 있는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실무협의회에 대해선 일본이 불참이나 연기 등의 연락을 해온 것은 없다고 밝혔다.

통화스와프 서로 다른 통화를 미리 정한 금리와 조건에 따라 일정 기간 서로 맞바꾸는 거래다. 중앙은행 간의 통화스와프는 한 나라가 자국 통화를 맡기고 상대국의 통화를 빌려오는 것이다. 현재 시점의 계약 환율로 자국 통화를 상대방 국가 통화와 교환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계약 때 맺은 환율로 원금을 재교환한다. 통화스와프는 필요하면 언제든지 가져다 쓸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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