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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금융위기 때 미국과 통화스와프 불안감 한 방에 날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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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해 10월 한·일 양국은 통화스와프 규모를 700억 달러로 늘리는 협정을 맺었다. 사진은 당시 청와대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 모습. [중앙포토]

한국이 외국과 맺은 첫 통화스와프는 2001년 7월 일본과 맺은 20억 달러짜리 계약이었다. 한국은 인도네시아(2004년) 등과도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가장 드라마틱했던 통화스와프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달러 가뭄이 심각했던 2008년 10월 말 체결한 한·미 통화스와프였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은 금융시장의 불안을 한 방에 날린 ‘홈런’이었다. 2008년 10월 30일 하루 만에 원화가치는 11년 만에 최대 폭인 177원이 뛰면서 달러당 1200원대로 안착했고, 증시도 사상 최대폭인 116포인트(12%)나 올랐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나 내렸을 때도, 시중은행의 외화 차입금을 정부가 지급보증하겠다고 나서도 곤두박질쳤던 금융시장이 통화스와프 한 방으로 한숨을 돌렸다. 달러를 찍어내는 기축(基軸) 통화국인 미국이 제공하는 ‘달러 우산’의 힘은 그만큼 강력했다.

 그 후 한·일, 한·중과도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하지만 실제로 통화스와프를 활용해 돈을 빌린 곳은 미국뿐이었다. 당시 달러 가뭄이 심했지만 한·일, 한·중 통화스와프는 엔화나 위안화를 원화와 교환하는 계약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에도 한·중, 한·일 통화스와프를 확대하는 낭보가 있었다. 한국 정부는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국제금융시장이 출렁거렸던 그해 8월부터 통화스와프를 추진했다. 한·일 통화스와프는 당시 수준(130억 달러)의 다섯 배가 넘는 700억 달러로 크게 늘었고, 엔화뿐만 아니라 300억 달러의 ‘달러 스와프’까지 포함돼 있어 의미가 컸다. 한·중 통화스와프도 3600억 위안, 64조원으로 두 배 확대됐다.

 통화스와프는 외화 마이너스 통장과 비슷하다. 부자들은 마이너스 통장 쓸 일이 많지 않은 것처럼 선진국보다 개도국이 더 체결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선진국이 시혜를 베푸는 건 아니다. 냉철하게 주판알 튕기면서 윈-윈 하는 측면이 강하다. 2008년 한·미 통화스와프 당시 미국은 한국이 주장했던 ‘리버스 스필오버(reverse spillover)’를 염두에 뒀다. 선진국에서 신흥국가로 옮아간 금융위기가 다시 선진국으로 넘어가 금융위기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 등 신흥국이 달러가 모자라 미 국채를 팔아치우면 금융시장은 더 어려워질 수 있었다. 미국이 아시아, 특히 중국에 ‘견제구’를 날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과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일본·중국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통화스와프가 원화가치 하락과 엔화가치 상승을 억제해 수출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위안화의 국제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중국·일본 간의 미묘한 긴장관계를 감안할 때 한국이 어느 한 국가와만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것은 한국에도, 중국·일본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한·일 통화스와프 중단은 한·일 양국 모두에 껄끄러운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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