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냉정과 자제 요구되는 한·일 정부 감정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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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일 관계가 급랭하고 있다. 독도 문제와 과거사를 둘러싼 양국 정치권의 날선 공방이 두 나라의 민족주의적 국민감정과 맞물리면서 정부 차원의 감정싸움으로 비화하고 있다. 정치적 계산을 앞세운 과잉 대응 속에 한·일 관계와 동북아의 앞날을 생각하는 성숙한 외교는 설 땅을 잃고 있다. 정제되지 못한 거친 감정이 세련되지 못한 방식으로 마구 분출되는 양상이다.

 최근 사태의 근본적 책임은 일본에 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이 독일처럼 확실하게 사과하고 반성하는 자세를 보였다면 한·일 관계가 지금처럼 악화될 이유가 없다. 군대 위안부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에 대해 깨끗하게 잘못을 인정하면 끝날 일이다. 온갖 꼼수를 동원해 책임에서 빠져나가려 하고, 왜곡된 역사 교과서에 눈감으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놓고 일본은 마치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처럼 법석을 피우고 있지만 이 또한 먼저 자극한 쪽은 일본이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엄연한 대한민국 영토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독도에 대한 노골적인 영유권 주장의 강도를 갈수록 높여왔다. 대한민국 최고지도자가 직접 독도를 방문하는 것이 부당한 영유권 주장에 쐐기를 박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판단하도록 몰아간 책임은 일본에 있다. 일본 정부가 이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 운운하며 흥분할 일이 아닌 것이다.

 우리도 이 대통령의 세련되지 못한 언사(言辭)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특히 일왕의 방한 문제와 관련해 “한 몇 달 단어를 뭘 쓸까 (고민한 끝에), 또 ‘통석의 염’ 뭐 어쩌고 이런 단어 하나 찾아서 올 거면 올 필요 없다”고 한 것은 외교적으로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굳이 입에 올릴 필요가 없었다. 국회의장단과 만나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한 것도 사려 깊지 못한 발언이었다. 한·일 간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지향하겠다던 자신의 말을 스스로 뒤집는 비(非)외교적 언사였다.

 그렇다고 일본 정부가 한·일 재무장관 회의를 연기하느니, 한·일 통화 스와프를 재검토하느니,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겠다느니 하며 부산을 떠는 것은 정치적 고려를 앞세운 과민 반응이다. 정치권의 경솔한 대응이 국민감정을 자극하고, 이것이 다시 정부의 과잉 대응을 부추기는 악순환을 경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절제된 대응이 절실하다. 대다수 한·일 국민은 최근 사태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미 양국은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끊을 수 없는 상호 의존적 관계에 있다. 국수주의자들이 치는 북소리에 양국 민간인들이 신변 안전을 우려하는 사태가 말이 되는가.

 국교를 단절할 것도, 전쟁을 할 것도 아니라면 이쯤에서 양국 정부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두 인접국의 치졸한 감정싸움은 어느 쪽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