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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업의 '기' 를 살려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경기 회복 기미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수출은 크게 줄고 물가는 가파르게 상승함으로써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무려 9% 이상 줄면서 3월에 이어 두달 연속 감소세를 보였고, 소비자 물가도 지난달 전년 동월 대비 5.3% 늘면서 올들어 벌써 2.5%나 올라 정부 목표치인 3%대에 근접했다. 국내총생산 중 약 40%의 비중을 차지하는 수출이 당초 예상했던 11% 증가율을 달성하지 못하면 올해 경제성장은 그다지 기대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정부가 목표하고 있는 경제성장률 5~6%를 달성하기 위해 내수 및 수출 수요를 자극한다면 아슬아슬한 물가 안정 기조를 흐트러뜨리기 때문에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 범위도 매우 좁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지난해 여유 있을 때 구조조정을 제대로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지금이라도 정부는 어정쩡한 자세에서 벗어나 정책적 스탠스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우선 정부는 저(低)성장 기조를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춰 4% 수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야 한다. 재정.금융 등 거시정책을 사용해 무리하게 성장률을 높이려 해서는 안되며, 정치권의 '부양 압력' 을 과감하게 차단해야 한다.

대신 과감하고 신속한 구조조정을 통해 시장의 불안.불신을 해소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수출정책에서도 행정적 독려나 밀어내기식 수출 등 단기적.근시안적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고 산업.기업의 활력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

제조업보다 금융, 굴뚝산업보다 벤처가 우대되면서 실물경제의 소외감과 제조업 기피 풍조가 만연한 지 오래됐는데, 이것이 시정돼야 수출 활로가 열린다.

제조업과 전통산업 기업의 '기(氣)살리기' 정책은 구체적이고 과감하게 실천돼야 한다. 또 단기적인 수출 부양은 별로 실효가 없을 것이다. 3월 이후 수출이 감소한 것은 미국과 일본 등 세계 경제의 침체 탓이 가장 크며, 이는 우리 수출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낮아지지 않은 데서도 드러난다.

당장의 수출 부진보다 더 큰 문제는 수입의 지나친 감소와 이로 인한 국민경제의 축소 균형 우려인데, 이는 기업의 투자 마인드와 생산활동 등 활력이 약화됐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수출대책은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환경의 불확실성 해소와 기업의 '기 살리기' 에 둬야 한다.

또 물가 움직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물가가 상승 기조로 확실히 접어들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환율 상승분이 물가에 아직 반영되지 않아 5월부터의 물가가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경제는 수요 위축으로 생산능력이 남아돌고 있어 수급(需給)갭이 핍박되는 상황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정부의 무리한 경기부양책으로 인해 공급 요인에서 비롯된 인플레이션이 수요 팽창과 결부될 경우다.

따라서 정부는 경제정책 운용의 틀을 저성장 기조로 바꿔야만 물가 불안과 수출 부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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