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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대신 IT 장비... 공장에서 쑥쑥 자라는 농산물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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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호 20면

경기도 고양시의 식물공장 베지테크에서 직원이 채소를 살펴보고 있다.이 회사는 수경재배에 필수적인 첨단 센서와 안전 시설에 집중 투자하는 대신, 일반 자재류는 값싼 제품을 써 원가를최소로 줄였다. [사진 베지테크]

#1 10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구산동. 파주와 가까운 자유로 주변 농지 가운데 베지텍스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겉모습은 흔한 창고지만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반도체 공장을 방불케 하는 방진복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에어워셔와 소독 절차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베지텍스 공장 내에는 파릇한 상추 등 채소가 자라고 있다. 이 채소류는 8월 중순부터 고양시 69개 학교에 급식용으로 제공될 예정이다.올 6월 완공한 베지텍스는 기존의 시범사업형, 보여주기식을 넘어선 본격적인 ‘실전형’ 식물공장이다. 김종철(37) 베지텍스 대표는 “지자체·정부의 자금 지원 없이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농업도 이젠 첨단산업

김 대표는 식물공장과 관련해 풍부한 경험자다. 식물공장 선진국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선도 기업인 페어리 에인절(현 페어리 플랜트 테크놀로지)에 입사해 5년간 식물공장 설계·건축·운영 등 전 분야를 경험했다. 그는 처음부터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식물공장을 지었다. 대부분 자재를 국내에서 구해 최소 비용으로 충당했고, 보여주기 위한 시설은 하나도 없다. 수확도 수작업으로 한다. 하지만 이산화탄소 공급 장치, 빛 확산 및 제어장치, 영양액 공급장치 등 수경재배 필수시설에는 최신 첨단기술과 노하우를 담았다. 김 대표는 “일본과 국내 식물공장 상당수가 외부 자금 지원에 의존하고 판로 개척이 안 돼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우리 식물공장은 정말 돈벌이가 되며,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입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 경기도 화성시 화옹방조제 옆 간척지.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공사가 한창이다. 동부팜한농의 자회사 동부팜화옹이 건설 중인 첨단 유리온실단지다. 총 15㏊(약 4만5000평)에 이르는 이 시설은 단일 유리온실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다. 동부팜화옹은 올해 말 공사를 완료하고 내년 1월부터 작물 재배를 시작한다. 내년 3월에는 첫 수확도 예정돼 있다. 주로 재배할 품종은 고품질 토마토. 초기 생산량 5000t은 대부분 일본 등에 수출할 계획이다.

서울 태연이엔지가 생산하는 아이스플랜트. 경기도 여주 아이팜에서 기르는 무농약 인삼.

농림수산식품부·농어촌공사·화성시와 함께 추진하는 이 첨단 유리온실에는 약 600억원이 투입된다. 규모도 크지만 로봇 등 각종 자동화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지열 순환을 이용해 냉·난방 효율을 높이는 등 각종 첨단기술이 대거 투입됐다. 동부팜화옹 관계자는 “농업의 규모화, 조직화, 첨단화를 실현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게 목표”라며 “고품질의 안전한 농산물 생산 시스템과 노하우를 일반 농가와도 공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부그룹은 화성시 시범사업에 이어 전북 새만금에도 첨단 유리온실을 포함한 대규모 영농단지 조성에 나설 계획이다.

경기도 화성시에 건설 중인 대규모 첨단 유리온실.

우리나라 농업의 첨단산업화는 대규모 첨단 유리온실과 식물공장 등 시설농업에 집중된다. 밀·옥수수 같은 곡물은 압도적인 자연환경과 대자본이 투입되는 미국 등과 맞서기 어려워서다. 반면 시설농업은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갖춘 IT 의존도가 높은 데다 인근에 일본·중국 등 수요처가 많아 가능성이 크다. 경기도농업기술원 미래농업팀 이상우 박사는 “시설농업 선진국인 네덜란드가 본받을 만한 사례”라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경제활동인구의 불과 3%가 농업 분야에서 일하지만 이 나라 전체 수출액의 10%인 550억 달러의 농산물을 매년 수출한다. 미국·프랑스에 이어 세계 3위의 농산물 수출국이다.

돈 버는 식물공장이 숙제
농업 경쟁력을 갖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소비자의 입맛은 까다롭고, 안전성에 대한 요구 수준은 높기 때문이다.경기도농업기술원 관계자는 “높은 부가가치가 있는 농산물을 적절한 가격에 내놓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며 “국내에서도 지자체 등의 지원을 받아 건립된 식물공장 중에 판로와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해 경영이 어려운 곳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성공 가능성을 보이는 곳들은 베지텍스처럼 설계부터 수익성을 목표로 원가 절감에 나서거나 수익성 높은 작물을 재배하는 곳들뿐이다.

서울 금천구에 있는 태연이엔지는 식물공장용 특용작물에 착안한 사례다. 이 회사는 아이스플랜트(ice plant)에 특화했다. 메디컬 허브의 일종인 아이스플랜트는 남아프리카가 원산지로, 얼음 알갱이가 붙어 있는 것 같은 외형에서 이름을 따왔다. 독특한 식감과 맛으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신종 채소다. 일본에서 수년 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고,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태연이엔지가 일본 기술을 도입·개량해 생산 중이다.

이 회사 김선일 사장은 “일본 기술을 도입했지만 재배 기간을 줄이고 개체당 중량을 높이는 등 국산화했다”며 “지난해 9월부터 특급 호텔 등에 납품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도 식물공장 사업에 뛰어든 뒤 아이템 선정에 공을 들였다. 식물공장의 장점인 높은 생산성은 단점도 된다. 매일 생산되는 채소류를 바로 팔지 못하면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초기 투자가 많아 더 위험하다. 아이스플랜트에 착안한 것은 이런 고민의 산물이다.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아이팜도 이색 아이템으로 승부를 건 식물공장이다. 여기서는 인삼을 재배한다. 일반 노지 인삼은 특성상 농약을 많이 쓴다는 점에 착안해 가능한 한 농약을 쓰지 않고 채소처럼 먹을 수 있는 인삼을 기르고 있다. 이상훈 아이팜 사장은 “3년 전 연구를 시작해 지난해 처음 파종했다”며 “2년근이 나오는 내년 2월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 역시 일반 채소류 등으로는 식물공장 운영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봤다. 이 사장은 “아무도 안 해본 시도라 걱정도 크지만 채소처럼 날것으로 먹을 수 있는 무농약 인삼에 대한 수요는 분명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식물공장 150개 가동
식물공장과 대규모 첨단 유리온실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경기도 농업기술원은 로봇을 이용한 첨단 식물공장 시설과 태양광·지열 병용형 첨단 유리온실 등의 연구 시설을 갖추고 있다. 농촌진흥원 국립농업과학원도 다양한 시설과 함께 기반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발광다이오드(LED)를 이용한 인공광 기술, 로봇 기술, 무선 네트워크를 이용한 생산 제어 기술, 에너지 절약 및 재생 기술 등 시설농업에 필수적인 기반 기술의 국내 수준은 이미 상당히 높다.

인공광을 이용한 식물공장 연구 전문가인 황창희 전북 LED 융합기술지원센터장(전북대 반도체과학기술학과 교수)은 “식물공장은 사람에게 이로운 특정 기능성 물질이 들어간 농산물이나 식물에서 의약품을 만들어내는 분자농업 등 적용 범위가 넓다”며 “식물공장이 단순한 농업 차원을 넘어 국가가 관심을 기울일 첨단 제조업이라는 근거”라고 말했다.또 이 분야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초기 단계여서 지금 투자할 가치가 높다는 의견도 많다. 일본의 움직임은 이 분야에서 참고 사항이 된다. 일본은 현재 150개가 넘는 식물공장이 가동 중이다. 이 공장들은 대부분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가 제대로 수익을 내는 곳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계속 지원을 하고 있다. 농수산성과 경제산업성은 2008년 공동으로 ‘농상공 제휴 식물공장 워킹그룹’을 발족해 100억 엔(약 1350억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했다.

일본이 노리는 것은 식물공장에서 나오는 채소류 자체보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형태의 식물공장 플랜트를 해외로 수출하려는 계획이다. 청정 채소류 수요는 많지만 생산이 불가능한 중동·아프리카·러시아 등이 목표 시장이다. 또 식물공장은 특성상 이산화탄소를 많이 쓰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총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데에도 쓰일 수 있다.
전북대 황창희 교수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오른 국내 기반 기술을 실제 현장에 적용하고 저변을 넓힐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꾸준한 정부의 정책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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