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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플레이로 얼룩진 한국 정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3호 35면

11일 새벽 런던 올림픽 남자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격파한 후 카메라 앞에 선 주장 구자철 선수의 얼굴은 누구보다 반짝였다. 눈 아래 반창고를 붙인 무뚝뚝한 표정의 박주영은 데이비드 베컴 뺨치는 미남으로 보였다. 그들뿐이랴. 양궁·펜싱·체조 등 여러 종목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은 열대야 속에서 밤잠 설치며 경기를 지켜보던 국민에게 큰 재미와 감동을 줬다. 비록 메달 획득엔 실패했지만 바벨을 쓰다듬으며 올림픽 무대와 작별하는 장미란 선수의 모습은 국민들 가슴을 뜨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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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올림픽이 이제 막을 내린다. 이와 함께 12월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움직임은 분주하고 시끄러워질 것이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출마 여부도 곧 결정 날 것이고, 올림픽 열기에 움츠렸던 여야 정당과 대선 주자들의 흥행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다.

그들은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고, 희망 있는 나라를 만들고, 국가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한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적어도 올림픽 기간에 정치권은 국민을 짜증나게 하고 반칙 행위를 일삼았다.

민주통합당 이종걸 최고위원이 박근혜 새누리당 예비 후보를 겨냥해 트위터상에서 ‘그년’이란 표현을 쓴 게 단적인 사례다. 4·11 총선 당시 김용민 후보를 둘러싼 막말 논란을 떠오르게 했다. 새누리당의 3억원 돈 공천 의혹은 책임 소재를 떠나 돈 정치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줬다. 자신들과 뜻이 다르다 해서 합동연설회에 나온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에게 멱살잡이를 한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의 모습은 또 어떤가. 민주통합당 손학규 후보 측은 10일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영입했다고 발표했지만 이 전 위원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손 후보 측이 세(勢) 과시를 위해 영입하지도 않은 인물을 거명한 셈이다.

모두 파울 플레이, 반칙이다. 스포츠는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고 승리해야 감동을 준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국제스포츠체육협의회(ICSSPE)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유네스코(UNESCO)가 공동으로 만든 ‘페어 플레이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Fair-play)’의 핵심은 ‘페어플레이가 없는 스포츠는 스포츠가 아니다’다. 선언문은 맨 앞에서 ‘상당한 물질적 보상과 명예를 가져다주는 승리(winning)에 대한 과도한 욕심이 페어플레이를 위협하는 가장 커다란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승리를 ‘대선 승리’로만 바꾸면 우리 선거판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12월 대선에서 우리 국민은 관람객이 아니라 심판이다. 펜싱 신아람 선수의 ‘멈춰버린 1초’에 우리는 얼마나 분개했던가. 운동 경기 심판이 잘못하면 그를 비난하고, 선수를 위로하는 수준에 그치지만 선거에서 잘못된 판정을 내리면 후유증은 고스란히 심판인 유권자의 몫이다. 대통령 선거가 다섯 달 남았다. 유권자는 심판으로서 정치인들의 실력과 반칙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그래야 한국 정치가 긴장하고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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