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본에 66년생 말띠가 적은 까닭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2호 33면

전후 일본의 출산율 그래프에는 도끼 자국이 선명하다. 완만하게 하강하던 그래프에 느닷없이 부리 모양의 함몰이 출현한다. 출산율이 급감한 1966년의 흔적이다. 그해 출생자는 대략 136만 명. 65년 182만 명, 67년 194만 명과 비교하면 확실히 놀라운 감소다. 충격이 컸던지 66년의 출산율(1.58명)은 그 밑으로 떨어진 1989년의 ‘1.57 쇼크’가 발생할 때까지 일본 인구정책의 마지노선 역할을 했다.

허귀식의 시장 헤집기

66년에 무슨 곡절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파괴적인 지진·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는 없었다. 다만 60년마다 한 번 찾아온다는 병오년이었다. 그해에 태어난 아이는 불행해진다는 속설이 전해지는 말띠해였다. 당시 일본에선 이를 맹신한 나머지 임신을 기피하거나 낙태를 결정한 부부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속설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그래프의 함몰이 너무 뚜렷했다. 그래서 나온 게 ‘증권 불황’의 후유증이란 경제적 해석이다. 잘나가던 상장사가 65년 도산하면서 전후 경제성장과 함께 크게 올랐던 주가가 급락하고, 호시절을 구가하던 증권사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게 증권 불황이다. 그 여파로 출산 계획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젊은 부부가 늘었을 것이란 추론을 해볼 만하다.

증권 불황 직전 일본은 도쿄 올림픽에 대비해 지하철·고속도로·신칸센·항만 등 인프라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 올림픽 경기가 컬러 화면으로 위성중계되자 컬러TV가 불티나게 팔렸다. 올림픽은 투자와 소비의 전환점이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뒤 투자가 일단락되자 성장률이 급락했다. 63년 10.5.%, 64년 13.1%까지 치솟던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65년엔 5.2%로 주저앉았다. 그간 올림픽 인프라를 짓느라 빚이 늘어나자 서둘러 재정지출을 줄인 게 화근이었다. 66년생이 잉태된 시기는 그렇게 어수선하고 불안했다.

65년 11월 일본 정부가 위기 대책으로 실행한 게 전후 최초의 적자국채 발행이다. 오늘날 1000조 엔(약 1경4500조원)에 이르는 국가부채 바벨탑의 출발점이었다. 경제 운용의 골칫거리인 디플레나 미래 국민 생활의 파괴자인 재정파탄의 시작이 올림픽이었다고 말하는 일본인이 적지 않은 이유다. 좀 과한 듯해도 황당한 얘기만은 아니다.

도쿄 올림픽처럼 고도성장기에 개최된 88년 서울 올림픽,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개최국이 스포츠 행사를 발전상을 과시하는 마당이자 도약의 디딤돌로 삼으려 했다는 점에서 흡사하다.

흔히 올림픽 개최국에서는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총고정자본비용(공공투자와 민간 설비·주택 투자 등 고정자본 투자의 합계)의 비중이 급격히 커진다. 그 자체가 성장을 자극한다. 이들 나라엔 올림픽 자체가 또 하나의 대규모 공공투자사업이었다.

하지만 생산성과 경제 효율화를 위한 개혁에 유의하지 않으면 올림픽 이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다. 2016년과 2018년 각각 여름·겨울 올림픽을 앞둔 브라질과 한국도 새겨봐야 할 교훈이다. 역사가 그렇듯 실수는 반복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