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주택담보대출 부실화 막을 대책 시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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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가 급기야 이른바 깡통주택과 하우스 푸어(House Poor)를 양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3월 현재 전체 주택담보대출 282조원 가운데 은행권의 담보인정비율(LTV) 60%(수도권은 50%)를 넘는 대출이 무려 4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담보인정비율이란 금융회사가 주택을 담보로 대출해줄 때 주택가격 대비 대출을 해줄 수 있는 한도로 정한 비율이다. 금융회사들은 실제 대출금이 주택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 기준율을 넘어서면 원리금 상환이 어려울 수 있다고 본다. 사실상 위험대출로 간주된다. 그래서 금융회사들은 이 비율을 초과한 대출에 대해서는 만기를 연장할 때 원금의 일부를 갚도록 요구한다. 이처럼 원금상환 요구에 직면한 위험대출이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15%에 이르는 셈이다.

  문제는 기존 대출에 대한 이자를 내기도 벅찬 마당에 원금마저 갚아야 할 경우 가계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대출은 부실채권으로 분류되고 담보로 잡힌 집은 경매로 넘어간다. 이런 상황까지 몰리지 않으려면 경매에 넘어가기 전에 주택을 헐값에 처분할 수밖에 없다. 빚 부담에 짓눌린 하우스 푸어의 비참한 말로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근본 원인은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에 따른 주택가격의 하락이다. 당초 주택을 구입할 때는 담보인정비율에 여유가 있었지만 비교기준이 되는 집값이 떨어지다 보니 LTV가 기준선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앞으로 집값이 더 하락하면 이런 식으로 LTV 기준을 넘어서는 위험대출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여기다 주택담보대출의 부실화를 우려한 금융권이 서둘러 원금회수에 나서면 주택시장에 헐값으로 내놓는 급매물이 늘어나고, 집값은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빚어진다. 자칫하면 주택의 대량 투매와 주택가격의 폭락 사태를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금융회사로 하여금 LTV를 신축적으로 적용하고, 초과대출 원금을 신용대출로 전환하거나 일시상환 대출금을 중장기 원리금 분할상환대출로 전환할 것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대책만으론 하우스 푸어 문제를 풀기에 역부족이다. 근본적인 처방은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고, 가계의 소득을 늘리는 것뿐이다.

 문제는 그러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단기적으로 마땅한 정책수단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결국 단기적으로는 주택거래의 활성화를 통해 주택시장의 연착륙을 유도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충격을 분산하는 차선책을 택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최악의 경우 정부가 담보대출을 받은 주택을 환매조건부로 매입해 주는 특단의 조치도 검토할 만하다. 무엇보다 하우스 푸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것이 금융권의 부실과 경제위기로 비화하지 않도록 다각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