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도시서 만났다 … 바이올린 샛별과 기교파 피아니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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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키 크롬로프 국제 음악제’에서 협연한 바이올리니스트 정상희(왼쪽)와 피아니스트 콘스탄틴쉐르바코프. [사진 쉔부른클래식매니지먼트]

붉고 뾰족한 지붕의 집과 돌길, 강을 끼고 마을을 내려다보는 성.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것만 같은 체코의 체스키 크롬로프는 1992년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조용한 마을이 매년 여름이면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체스키 크롬로프 국제 음악제’(7월 20일~8월 18일) 덕분이다.

 지난달 27일, 체스키 크롬로프 성 ‘라이딩 홀’에 1000여 명의 관객이 꽉 들어찼다. 프라하 방송 교향악단의 첫 무대가 끝나고 관객이 숨을 고르는 동안, 파란색 드레스를 입은 까만 머리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등장했다.

 지난해 이 페스티벌에서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협연을 가져 샛별로 떠오른 정상희(23)였다. 이어 검정 정장 차림의 피아니스트가 걸어 나왔다. ‘살아있는 라흐마니노프’라 불리는 피아니스트, 콘스탄틴 쉐르바코프(49·러시아)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이중 협주곡’ 1악장이 시작됐다. 빠르고 힘찬 피아노 독주를 요염한 바이올린 선율이 이어받았다. 주거니 받거니, 마치 남녀가 춤을 추듯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가 이어졌다. 거장의 노련함과 동양인 연주자의 신선함에 객석이 매료됐다.

 느리고 감미로운 2악장에선 협연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했다. 일부 관객은 공연 중 예의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카메라를 들었다. 연주가 끝나자 기립박수와 환호가 길게 이어졌다. 올해 두 번째 방문이라는 이레네(43·스페인)는 “기품이 넘치는 바이올린 연주가 무척 아름다웠다”고 평했다.

 콘스탄틴 쉐르바코프는 내한 공연을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피아니스트다. 고도의 기교가 필요한 연주곡만을 택하는 그는 강렬한 타건(打鍵)으로 유명하다. 연주가 끝난 후,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그는 “동양인 연주자와의 협연은 처음인데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정상희는 “올해도 초청받아 기뻤다. 떨렸던 지난해와 달리, 이번에는 즐기면서 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 아시아 솔리스트가 국제 음악제에 연이어 초청받는 일은 드문 일이다. 올해 이탈리아·노르웨이·크로아티아 등에서 연주회가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는 그는 “페이스북으로 찾아와 응원해주는 팬도 늘었다. 많은 아티스트와의 협연을 통해 더 성장하고 싶다”고 했다.

◆체스키 크롬로프 국제 음악제(Cesky Krumlov International Music Festival)=1992년 시작돼 올해 21회를 맞은 국제음악제. ‘프라하의 봄’에 버금가는 페스티벌로, 체코뿐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 클래식 팬들이 몰려온다. 세계의 유명 연주자들이 참가하며, 한국에서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등이 초청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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