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그들이 내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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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쑤성 옌청(鹽城)에 있는 기아자동차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에 동반 진출한 현대모비스 공장도 봤습니다. 국내에서도 그렇지만, 요즘 중국에서도 기아자동차 잘 나갑니다. 우리나라 프라이드의 변형인 K2는 한 달 약 1만3000대까지 팔린답니다. 히트작이지요. 덕택에 현대ㆍ기아자동차는 올 상반기 중국에서 17만4150대를 팔았습니다. GM을 제치고 소형차 분야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했습니다.

공장에 들어가봤습니다. 깨끗했습니다. 선선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덥지도 않았습니다. 젊은 직원들은 열심히 일하더군요. 그들을 보면서 많이 생각했습니다. 아니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첫째 ‘지들끼리 다 해먹을 것’이라는 공포입니다.

중국은 지금 생산의 국내 통합을 하고자 노력합니다. 이제까지는 핵심 부품을 한국·일본·대만 등에서 수입해 자국에서 조립하는 산업구조를 보였지요. 그러나 기술 수준이 높아진 지금, 중국 기업은 부품 역시 중국 국내에서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아 주변 국으로 흩어졌던 생산 공정을 중국 국내로 통합시키고 있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직격탄입니다. 우리나라의 전체 대중국 수출 중 약 70%가 중간재로 구성됩니다. 중국 수출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기아자동차는 전체 부품의 약 95%(금액기준)를 중국 내에서 조달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수입비율이 훨씬 높았습니다만, 이제는 한국에서 도달하는 부품 비율이 5%도 채 되지 않습니다. 물론 대부분 동반 진출한 업체로부터 공급을 받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회사 역시 중국 법인입니다. 중국에 세금을 내고, 중국 GDP통계에 잡히는 중국 기업인 것이지요. 우리나라에 있는 자동차부품 업체들은 그만큼 기회가 줄어들 것입니다.

우리가 그 동안 중국의 부상에 편승할 수 있었던 것은 동아시아에서 형성된 생산 분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핵심 부품을 중국에 수출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중국이 ‘나 혼자 다 먹겠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먹을 떡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핵심은 기술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기술이 있었기에 중국에 제품을 팔 수 있었습니다. 기술이 없다면, 그들은 우리 기업을 쳐다보지도 않을 겁니다. 중국이 탐낼 기술이 없다면, 우리나라 산업은 침몰할 수 있습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둘째 공포는 '저들이 내 일자리를 빼앗갈 것'이라는 겁니다.

경제, 결국 일자리입니다. 국제 경제관계는 곧 남의 나라 일자리를 빼앗고, 빼앗기는 ‘전쟁’이기도 합니다. 그 전쟁에서 지면 내 일자리는 남의 나라로 넘어갑니다. 옌청은 바로 그 현장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자리를 빼앗아가느 현장이지요.

30일자 저희 신문에 쓴 ‘노트북을 열며’ 칼럼으로 대신합니다.

지난 주 방문한 중국 장쑤(江蘇)성 옌청(鹽城)의 기아자동차 공장. 조립라인 위의 자동차가 쉼 없이 돌고 있다. 이곳 공장 직원 약 3800명. 대부분 주변 전문대학에서 뽑아온 젊은이들이다. 이들의 한 달 급여는 평균 4000위안(약 70만 원)이다. 한 해 약 20%씩 오른다고는 하지만 국내 자동차 업계 현장 근로자의 5분의1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노동 생산성은 오히려 높다. 차량 한 대 생산에 투입하는 시간을 뜻하는 HPV는 평균 19.8로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 물론 국내 공장보다 뛰어나다. 한 라인에서 4~5개 모델을 바꿔가며 생산할 수도 있다. 그만큼 중국 근로자의 기술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그들에게도 노조(공회)는 있지만, 대립이 아닌 협력 파트너에 가깝다. 주문이 밀릴 때에는 자진해서 ‘점심 시간을 30분 단축하겠노라’고 제의하기도 한다. 지자체의 지원도 화끈하다. 옌청 시정부는 ‘철도 물류가 필요하다’는 말에 공장까지 철길을 깔아주기로 했다. 현지 관계자는 “한국에서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기업환경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조립 공장을 옮기니 부품 업체들도 동반 진출한다. 현대모비스 등 100여 개 기업이 주변으로 공장을 옮겼다. 좋은 기업환경을 찾아 가는 기업을 말릴 수는 없는 일, 그렇게 우리는 중국에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저급 노동력이니 별 문제는 아니다’라고 자위할 수도 없게 됐다. 임노동 일자리뿐만 아니라 고급 일자리 역시 중국으로 빨려 들고 있기 때문이다. 노트북 관련 일자리는 이미 상하이 주변 도시에 빼앗겼고, LCD디스플레이도 이전을 준비 중이다. 삼성전자의 시안(西安)공장 설립은 반도체 분야 일자리마저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중국과 FTA를 하려는 목적 중 하나는 그 흐름을 되돌려보자는 데 있다. 우리나라를 서방기업의 중국시장 공략 전초 기지로 조성하자는 뜻도 있다. ‘첨단 제조업 허브(Hub)’구상이다. 우리 업계에 축적된 기술 경쟁력, 글로벌 시장노하우 등을 감안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중국보다 월등히 뛰어난 작업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는다면 서방 기업은 여전히 한국을 외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역시 협력적 노사관계다. 분규를 선택하는 기업은 없다. 갈등과 대립을 종식시킬 노사관계의 혁신적 패러다임 변화, 그게 ‘FTA허브’의 선결 요건이다.

옌청 공장의 젊은 노동자들이 땀방울을 흘리며 작업을 하고 있는 그 시간, 한국의 자동차업계에서는 특근 거부, 부분파업, 심지어 직장폐쇄 등이 어지럽게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과연 내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옌청 자동차 공장의 젊은 노동자를 보면서 떠오른 질문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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