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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다음엔 내전이 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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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타마르 라비노비치
전 주미 이스라엘 대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우리는 ‘시작의 종말’과 ‘종말의 시작’ 사이에 놓여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는 오늘날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최근 군과 정부의 고위직 가운데 정권에 등을 돌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국방장관을 비롯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최측근 세 사람은 자살공격으로 사망했다. 저항군이 심지어 수도 다마스쿠스와 제2의 도시 알레포에서도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알아사드 정권은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몰락하다 이젠 붕괴·파멸로 다가서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3월 시작된 시리아 사태는 처음 몇 달은 평화적 시위와 무자비한 탄압의 반복으로 진행됐다. 그러다 반정부 세력은 여러 파벌이 연합하고 자유시리아군이라는 깃발 아래 군사조직을 만들고 국경을 넘어온 수백 명의 지하드(성전) 전사들이 군사공격과 테러활동을 벌이면서 세력을 강화했다. 서방국가들과 터키·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같은 아랍 국가들은 각기 다른 반정부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 반정부 세력은 자체 전력으로 정권을 전복할 수 없었으며 알아사드 정권도 반대파를 완전히 제거하는 게 불가능했다.

 알아사드 정권은 이슬람 소수파인 알라위파의 적극적인 지원과 사태를 관망하는 다른 소수 종파, 그리고 정권이 무너지고 이슬람주의자나 다른 급진파로 대체되는 걸 두려워하는 대도시 중산층 덕분에 버텨왔다. 외부에선 러시아와 이란이 정권의 지원자로 나섰다.

 현재 다마스쿠스와 알레포에서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알아사드 정권이 이전에 다른 지역에서 벌어졌던 반정부 활동은 축소보도한 데 비해 다마스쿠스 전투는 자세히 보도했다는 점이다. 이는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알아사드 정권이 곧 붕괴할 것으로 보는 것은 시기상조다. 정권은 타격을 많이 입었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국방장관이 암살당한 직후 곧바로 신임 장관을 임명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16개월 동안 정권을 보호했던 군 핵심 전력도 대부분 잘 버티고 있다. 반정부 세력은 여전히 분열된 상태다. 그리고 미국과 서방세력은 여전히 알아사드 정권에 강력한 압박을 가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하지만 종말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심지어 사업가인 피라스 틀라스와 알아사드 대통령의 친구이자 군 장성인 마나프 틀라스를 포함한 틀라스 형제는 정권의 내부 핵심 인물인데도 반정부 세력에 가담했다. 정권은 점차 더 많은 지역에서 통제권을 잃고 있다. 곳곳에서 알라위파와 수니파(시리아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슬람 종파) 간의 종파 내전으로 잔혹한 학살극이 벌어지고 있다.

 시리아 사태에는 몇 가지 위험 요소가 있다. 제대로 조직되고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반정부 세력이 없다면 알아사드 정권이 붕괴할 경우 시리아는 무정부 상태가 될 수 있다. 종파 간 대규모 내전이 발발하고 분리주의 운동이 일어나 국토가 사실상 분할될 수도 있다. 수많은 난민이 이웃 국가로 피신하면서 국제적인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 혼란과 전투가 이라크나 이란 같은 주변 국가로 번질 수 있다. 자국 내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에 저항의 불길이 번질까 전전긍긍해 온 터키는 이런 사태에 개입할 가능성이 가장 큰 나라로 꼽힌다. 시리아의 화학무기가 헤즈볼라(시리아의 시아파 무장단체) 같은 조직에 넘어갈 경우 이스라엘이 개입할 수도 있다.

 이런 위험 때문에 시리아의 내전이 지역적·국제적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더욱 효과적이며 서로 잘 연결된 국제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이타마르 라비노비치 전 주미 이스라엘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