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5의 저주?' 스스로 친 덫에 걸린 애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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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올가을 선보일 예정인 ‘아이폰5’의 덫에 걸렸다. 소비자들이 신제품을 기다리며 구매를 미루는 바람에 애플의 2분기 실적이 월가의 예상치를 밑돌았다. 침체된 장세에 애플이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했던 시장은 실망했다. 2분기에 애플은 88억2000만 달러, 주당 9.32달러의 순익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의 73억1000만 달러(주당 7.79달러)보다 20.7% 늘어난 것이다. 매출액도 23% 증가한 350억2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시장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 시장은 애플이 371억8000만 달러 매출에 주당 10.36달러 순익을 올릴 것으로 봤다고 로이터통신이 24일(현지시간) 전했다.

 애플은 실적 전망을 ‘짜게’ 하기로 유명하다. 그러곤 막상 뚜껑을 열면 깜짝 실적을 내놔 시장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신제품 발표 주기가 짧아지면서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났다. 신제품을 발표한 직후엔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지만 4~5개월만 지나면 차기 모델에 대한 기대 때문에 판매가 오히려 주춤해지는 현상이 되풀이된 것이다. 2분기 아이폰 판매가 시장 기대치보다 200만~300만 대나 적은 2600만 대에 그친 것도 이 때문이다. 더욱이 아이폰5는 기존 제품과 확연히 차별화될 것이란 소문이 퍼졌다. 액정은 더 커지고 두께는 더 얇아진다는 얘기다. 이런 기대가 판매 부진을 오히려 부채질했다.

 애플이 주춤한 사이 삼성전자가 갤럭시S3를 앞세워 미국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서자 양사의 신경전도 가열되고 있다. 애플은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지방법원에 삼성전자의 특허 침해로 25억2500만 달러(약 2조9000억원)의 직·간접 피해를 봤다는 서면 자료를 제출했다. 이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3월 31일까지 삼성전자가 특허를 침해해 최소 20억 달러의 부당이익을 올렸으며 이로 인해 애플은 5억 달러의 이익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여기다 2500만 달러의 로열티 수입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애플이 이런 자료를 미국 법원에 제출한 건 오는 30일부터 시작되는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 침해 본안 소송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소송에서 애플이 삼성전자의 ‘갤럭시 10.1’과 ‘갤럭시 넥서스’ 판매 금지 처분을 이끌어내자 본안 소송을 앞두고 기선 제압에 나선 것이다.

애플은 삼성의 표준특허에 대한 사용료로 대당 5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특허전문가 프로이언 뮬러는 이날(24일) 자신의 블로그 포스페이턴츠닷컴에 올린 글에서 “애플이 미국 연방법원 북캘리포니아 지원에 제출한 문서에는 삼성의 표준특허당 0.0049달러를 배상할 용의가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의 요구조건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앞서 법정 공방이 진행 중인 이탈리아 법원에는 판매액의 2.4%를 요구했다. 애플은 “삼성의 특허가 이동통신기기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표준특허이기 때문에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FRAND)’는 원칙에 따라 낮은 가격에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삼성의 기술이 없었다면 애플이 이동통신 업계에 성공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애플 역시 삼성의 특허 기술을 사용한 데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스페인발 위기의 재부상에 애플의 ‘어닝 쇼크’까지 겹치면서 25일 코스피지수는 장중 한때 1760선을 내주며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삼성전자(-1.03%)를 비롯한 전기전자(IT) 업종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전성훈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애플의 2분기 실적 부진은 휴대전화 보급률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증거”라며 국내 IT 업종에 대한 투자 의견을 ‘중립’으로 낮췄다. 김유진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이폰 판매가 부진하게 되면 국내 반도체 업체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애플의 부진한 2분기 실적이 삼성전자에는 호재라는 주장도 나온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2분기 실적은 스티브 잡스 사후 애플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삼성전자의 경쟁력은 강화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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