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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서 종목을 발굴하라!

중앙일보

입력

야행성으로 밤늦게 많이 활동하는 필자는 ‘24시간 편의점’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편의점에서 구매하는 물건이 거의 정해져 있다 보니 그 안에서의 행동 반경은 이미 습관적으로 정해져 있다. 항상 가는 코너만 가게 된다. 어느 날 밤늦게 졸음도 오고 해서 바람이나 쐴까 하고 편의점에 갔다.

처음으로 편의점 안을 천천히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그 날 나는 내가 항상 가는 편의점 안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물건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종류의 물건이 있다는 사실을 많은 시간이 지난 이후에야 내가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편의점은 내가 그 곳을 이용하기 전부터 그 자리에 존재해 왔으며, 내가 그 곳을 줄곧 이용하는 와중에도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이미 나와는(나의 의식과는) 무관하게 그 편의점은 그렇게 많은 종류의 물건을 구비해 오고 있었으며, 판매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내가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이며, 어떤 계기에 의해서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주식시장(회사, 실적, 종합지수, 고평가, 저평가, 경기동향 등)은 단 하나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직접적, 간접적 경험을 통해 얻은 그 ‘주식시장’을 하나의 개념화 된 ‘주식시장’으로 인식한다. 존재하는 시장은 단 하나이지만, 자신에게 느껴지는 시장과 다른 이에게 느껴지는 시장은 많은 차이를 드러낸다. 자신의 눈에 그려지는 주식시장은 자신의 주식입문과정, 경력, 주위환경, 투자방식, 투자금액 등에 의해 형성된다.

여기 24시간 편의점(주식시장)이 있다. 어린아이에게 그려지는 24시간 편의점은 변신로봇(소형주 혹은 A종목)이다. 여자들에게 그려지는 24시간 편의점은 초콜릿(중형주 혹은 B종목)이다. 그리고 나에겐 캔맥주와 땅콩(대형주 혹은 C종목)이다.

과연 우리는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것은 과연 현재 시장 그 자체의 모습일까? 혹시 자신만의 환상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의식이나 자의적 소망과는 무관하게 이미 존재한다는 시장을 어떻게 하면 똑바로 알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는 시장 자체와 우리의 인식과의 괴리를 좁혀 갈 수 있을까?

“빨간 모자 아가씨-.” 이것은 TV에서 하는 SK 정유회사 광고의 미모의 여자 탤런트를 부르는 소리가 아니다. 내가 자동차에 휘발유를 넣으려고 직원을 부르는 소리이다.

IMF가 터지고 길거리가 한산해지는 것을 느꼈다. 서울의 교통지옥이 한순간에 뻥 뚫린 아우토반이 되었다. 손님이 없어서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빈 택시들, 한낮 내내 주택가를 지키고 있는 출퇴근용 승용차들, 한산한 고속도로, 그러한 현상들이 일반화되었으며 내게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아무 문제의식 없이 예전부터 그러해 왔던 것처럼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누비고 있었다. IMF 전에 1시간 걸리던 거리가 30분… 20분… 10분…. 친구와 약속을 하고 약속 장소로 나가면 어느새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횟수가 늘어가고 있었다.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다시 그에 익숙해지고 있던 어느 날, 이제 다시 약속 시간에 늦어지기 시작한다. 다시 점점 서울 생활에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쏟아져 나오는 차량들, 거기서 나는 SK라는 정유회사 종목을 발견한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들어선다. 시원한 콜라를 하나 건네면서 말을 시작한다.

“빨간 모자 아가씨-. 저 몇 가지만 물어볼게요. 요즘 바빠요?(바쁘면 매출이 늘어난다는 신호이다.) 여기서 일 시작한 지는 얼마나?(사람을 신규로 채용하면 회사가 그만큼 잘 돌아간다는 말이다.) 보통 사람들이 기름 넣을 때 가득 넣어요? 아니면 1, 2만원씩 넣어요?(소비심리를 파악할 수 있다.)”

자동차에 휘발유를 넣는 5분 동안 무수히 많은 사항들을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의 가장 좋은 이점은 ‘빨간 모자 아가씨’들은 회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에, 흔히 주식담당자가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면서 대답을 해주는 것과는 다르게 직설적인 어법으로 현재 자신이 느끼는 부분들을 솔직히 말해준다.

이것은 노다지다. 이것은 어떤 재무제표보다도 솔직하다. 이것은 회사의 안쪽에서 들려오는 알짜배기의 ‘내부자 정보’이다. 우리 주위에는 이러한 구체성들이 의외로 무수히 널려 있다. 다만 우리의 무관심과 부주의로 그것을 그저 지나칠 뿐이다.

슈퍼마켓에서 우리는 농심을 알 수 있고, 백화점에서 신세계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아이들의 장난감에서 문구회사를 알 수 있고, 주위의 금연 혹은 흡연 인구를 통해 담배회사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솔직한 재무제표이며 종목인 것이다.

청솔 선생 플러스게이트 이사(pinesol@plusgate.co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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