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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독처럼 …‘국가 대 국가’ 이성(理性)으로 평화 돌파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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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반도포럼은 23일 서울 정동 달개비 레스토랑에서 ‘남북관계 3.0 : 한반도 평화협력프로세스’ 리포트를 발표했다. 왼쪽부터 김석진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권만학 경희대 교수, 백영철 한반도포럼 회장,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명림 연세대 교수. [김성룡 기자]

한반도포럼이 남북기본조약 체결을 제안한 것은 꽉 막힌 남북관계의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새 틀을 짜기 위해선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남북기본합의서 체제’를 뛰어넘자는 발상이다. 지난 20여 년간 남북관계를 규정해온 문건은 1991년 말 합의해 92년 2월 발효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다. 그러나 이 합의서의 효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북한이 발효 1년 후부터 본격적으로 핵 개발에 나서 거의 사문화된 상태다. 기본합의서의 핵심은 남북한의 관계를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의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한 점이다. 이는 평화 정착만을 목표로 해 통일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여기엔 남과 북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민족의식도 반영됐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남북관계는 굴곡을 겪었다는 게 한반도 포럼의 인식이자 평가다. ‘민족’이라는 개념에서 북한이 자신들을 ‘김일성 민족’으로 규정함으로써 남북 간에 괴리가 생겼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럼에도 남북은 ‘하나의 민족이며 특수관계’라는 애매모호한 관념에 빠져 서로 기대가 무산되면 상호비방의 수위를 높이고 적대의식을 표출했다.

그래서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했다. 남북한이 유엔 가입국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미 두 개의 국가라는 점이다. 따라서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설정하면 남북관계를 질적으로 한 차원 높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게 한반도포럼의 설명이다. 다만 민족문제는 기본조약 이행 속도에 맞춰 동질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풀어 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남북기본조약’의 내용은 동·서독 기본조약과 남북기본합의서를 원용했다. 토론 초기에는 ‘남북기본협정’으로 해야 ‘분단 고착화’의 빌미를 주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었다. 그러나 조약 비준 과정에서 초당적으로 국민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속성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해 조약체결로 결론을 내렸다.

물론 조약 단계까지 이를 때까진 넘어야 할 산이 적잖다. 서독에서는 기본조약이 위헌 재판에 회부되고 비준 과정도 험난했다. 연방헌법재판소는 ‘동독이 국제법상으로는 국가이나 서독은 이를 국제법상으로 승인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는 분단 고착화는 피하면서 양독 관계는 발전시키려는 연방헌법재판소의 고뇌가 반영된 결과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기본조약은 북측에는 국제규범과 의무를 준수하게 하고, 남측에는 북한을 좀 더 냉철한 현실의 입장에서 보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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