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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한민국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0호 31면

영국인들은 자국을 방문하는 프랑스 사람에게 영국은 음식이 볼품없고 기후도 안 좋은 데다 예술 수준도 프랑스만 못하다는 자기비하적인 변명을 자주 한다고 한다. 그래선지 오래전 영국 신문에서 ‘영국이 프랑스보다 훌륭한 점이 많다’며 이런 잘못된 습관을 버리자는 어느 영국인의 기고문을 읽은 적이 있다. 이 기고자는 영국엔 프랑스 못지않은 높은 수준의 문화(특히 음악)와 전통이 있다는 것부터 시작해 런던에는 파리와 달리 하이드파크라는 시민 휴식처가 있으며 길거리에서 개똥을 볼 수 없다는 주장까지 하였다. 대영제국의 후손들도 자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함께 보이지 않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모양이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50년이란 짧은 기간에 경제화, 민주화, 정보화를 이룩한 유일한 나라다. 모든 나라들이 한국을 경탄스럽게 바라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업적을 평가하는 데 인색하고 자부심도 약하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모르는 유일한 사람들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외국에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19세기 후반 이후 100여 년간 너무 어렵고 힘든 세월을 보냈기 때문일 수 있다. 아니면 우리가 업적보다는 콤플렉스를 너무 의식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우리의 꿈은 저 높은 데 있어 현재의 발전 수준에 만족할 수 없다는, 보이지 않는 각오일 수도 있겠다.

한국인의 정체성과 관련해선 우리가 보아도 혼란스러운 점이 있다. 한국인은 개인적으로는 우수한데 쉽게 분열되고 단합이 안 되는 민족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오죽하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구호가 나왔을까? 그렇다면 2002년 월드컵 당시 수십만, 수백만 명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거리응원에 참여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무엇인가.

한국인은 이기심이 강해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무려 349만 명이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에 참여한 것은 무엇인가. 한국인은 예부터 ‘베짱이 기질’이 있어서 가무에 능하고 놀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새벽종이 울리면 너도나도 일어나 일하고 또 일했던 새마을 정신은 무엇이고 중동 사막 한복판에서 죽도록 일했던 산업전사들은 무엇인가.

한국인의 삼보일배 가두시위와 촛불집회를 보면서 과연 이 나라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답다고 한다. 그렇다면 투석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또 다른 시위현장은 다이내믹 코리아의 모습인가. 한국인은 순결과 평화를 상징하는 흰옷을 즐겨 입는 백의민족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격정적이고 악바리 같은 붉은 악마는 무엇인가. 한국인은 무뚝뚝하고 표정이 없어서 건드리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마음 따뜻하고 정 많은 민족이라고 얘기하는 수많은 외국인들은 무엇인가.

한국은 중국·일본 같은 강대국 사이에서 국력이 약해 수많은 외침을 당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 변방의 수많은 소수민족 가운데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도 중국에 병합되지 않고 살아남은 민족이고,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는 국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맞짱 뜨겠다는 불량기질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렇게 단일민족이라는 포장 아래 다양한 얼굴과 습관, 행동양식을 갖고 있다. 그것은 한민족이 북방 몽골계 기마민족으로서 전사의 기질을 갖고서도 중국과의 오랜 교류를 통해 농경문화의 영향을 받아 선비 기질도 함께 갖추었기 때문이다. 또한 근세에 들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교차점에서 교량 역할을 하며 양쪽을 포용해왔기 때문이다. 결국은 잘 조화된 다양성이다. 음식으로 말하면 맛있는 오색 비빔밥이다. 그 외에는 우리의 상반되는 여러 가지 얼굴에 대해 달리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조환복 서울대 무역학과. 외시 9회. 주중 대사관 경제공사, 주홍콩 총영사,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주멕시코 대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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