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대국 영국·스웨덴의 자부심, 우리도 가져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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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초 5개월 일정으로 아프리카 남수단에 가는 한비야씨. [중앙포토]

“50년 전 우리도 전쟁이 나서 엉망이 됐습니다. 해외 비정부기구(NGO) 원조를 마중물 삼아 4000만 국민이 펌프질하니 이제 우리가 쓰고도 나눌 물이 됐네요. 여러분이 필요한 물을 다 가져오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펌프질하고 남는 물이 있다면 사랑의 릴레이를 펴주세요.”

 국제 구호활동가 한비야(53)씨가 10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한 말이다. 지원국인 미국, 영국, 호주, 일본에 이어 한국이 경험을 얘기할 차례였다. 자존심이 상해 고개를 푹 숙이고 듣던 아프가니스탄의 재난장관이 한씨의 말에 고개를 번쩍 들고 눈물을 글썽였다.

한씨는 “당시 아프가니스탄 정부 관료들의 호응을 잊을 수 없다”고 17일 말했다. 이날 한씨는 외교통상부 개발협력국의 주선으로 기자들과 만났다. 지난해부터 유엔 자문위원을 하면서 느낀 ‘한국 국제개발의 갈 길’을 들려줬다.

 이 자리에서 그는 “구호개발 분야에서 한국은 그야말로 ‘희망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식민지, 전쟁, 분단, 군부독재를 모두 경험한 나라가 흔한가요. 한국의 경험은 수혜국에 엄청난 호소력을 갖습니다.”

최근 10년 새 한씨는 유엔 중앙긴급대응기금(CERF) 자문위원,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자문위원을 거쳤다. 덕분에 구호개발 분야에서 현장과 학계, 정책 분야를 모두 아우르는 경험을 갖추고 가교 역할을 하는 독보적 존재가 됐다.

 한씨의 다음 행선지는 아프리카 남수단이다. 다음 달 5일 5개월 일정으로 떠난다. 고 이태석 신부가 의료 봉사활동을 폈던 곳이 바로 남수단의 톤즈다. 한씨는 톤즈에서 한센병, 콜레라 등 어린이 환자들을 돌봤던 이 신부에 경탄을 아끼지 않았다. “돌덩이 같은 현지 아이들 마음을 녹여 울린 것을 보면 이 신부는 인간의 탈을 쓴 천사”라고 말했다.

 “7년 전 낸 제 책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의 화두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였어요. 다음 책의 화두는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를 보면 한국 국민임이 자랑스럽다’란 말이 회자되게 하는 것입니다.”

한씨는 “ODA 최고 지원국인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 국민과 같은 자부심을 우리 국민도 갖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불쑥 ‘예뻐지는 비결’ 하나를 소개했다. “세상에 태어나 나, 나, 나 하고 살 수도 있지만 우리, 우리, 우리 하고 사는 기쁨을 최대한 누리세요. 화장 없이도 예뻐진답니다.”

 세계를 누비는 그도 못 가는 나라가 있다. 바로 북한이다. 그는 “구호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북한은 정말 아픈 상처”라면서 “어떤 기준으로 봐도 북한은 우리가 가장 먼저 가야 하는 긴급구호 현장인데 정치적 이유 등으로 접근도 못 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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