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인사 파행 극치, 신보 이사장 선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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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권 말 인사 난맥상이 도를 넘었다.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의 재(再)연임은 파행의 극치다. 안 이사장은 지난 주말 퇴임기자회견을 했다. “후련하다. 월급 받는 자리는 다시 안 가겠다”고 했다. 직원 송별회까지 마쳤다. 그런데 하루 뒤 재연임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가 “속사정이 있으니 묻지 말고 1년 더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 속사정이 뭔가. 무슨 일이길래 나가는 사람을 잡고 정부 고위 관료가 제발 더 있어 달라고 ‘부탁’까지 했을까.

 신보는 5월부터 새 이사장을 뽑는 공모 절차를 진행 중이었다. 공모 전부터 잡음이 많았다. 부산·경남(PK) 출신 금융위 고위 관료 홍모씨 내정설이 파다했다. 노조는 “또 특정지역 출신이냐. 퇴직 관료 낙하산은 절대 안 된다”고 성명을 냈다.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면접도 안 치른 PK 인사가 선임되면서 6대 금융지주회장이 모두 PK로 채워져 ‘PK 기피증’이 심해질 때였다.

 신보 임추위원들은 첫 모임에서 홍모씨 내정설이 실린 신문기사를 돌려 보며 “들러리는 서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임추위는 엄정한 평가를 거쳐 세 사람을 추천했다. 홍모 내정자는 1등이 아니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1등 후보를 제치고 짜여진 ‘각본대로’ 홍모씨를 단독 제청하려 했다. 제청권자인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두 달 전부터 청와대와 협의를 끝낸 사항”이라며 밀어붙였다고 한다. 그러다 여론에 맞고 물러선 게 이번 신보 인사 파행의 진상이다. 내정자를 낙하산으로 앉히지 못하게 되자 공모 자체를 없던 일로 한 셈이다.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니 임추위원들이 ‘김석동 금융위원장 고발’ ‘청와대 진상 조사’ 운운하는 것이다. 어디 신보뿐인가. 이 정부 내내 공기업 사장 자리를 둘러싸고 뒷말이 무성했다. 정치권의 전리품이나 공무원 노후보장용으로 전락한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그런 걸 막자고 만든 공모제가 되레 낙하산을 정당화하는 데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럴 바에야 공모제는 폐지하는 게 낫다. 이런 공모제에 직간접으로 간여한 청와대 인사라인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