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파독 광부·간호사 아들, 미 종신직 연방판사 올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미국 연방법원 종신직 판사에 13일 취임한 존 리(가운데)와 아버지 이선구(왼쪽), 어머니 이화자(오른쪽)씨. [시카고=연합뉴스]

“부모님은 내게 두 가지를 늘 강조하셨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는 것, 하지만 이민자로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 한인 역사상 세 번째로 종신직인 연방판사에 13일(현지시간) 취임한 존 리(44·일리노이 북부지원, 한국명 이지훈)의 말이다. 그는 이날 시카고 도심의 덕슨 연방법원 25층 제임스 벤튼 파슨스 메모리얼 법정에서 취임식을 갖고 이같이 말했다. 리 판사는 이민 가정의 자녀로서 성장기에 겪었던 애환들을 유쾌하게 들려주는 한편 자신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고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 이들에 감사를 전했다. 그는 “새로운 기회는 자신이 얻은 기회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자 하는 선하고 관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창조된다”고 말했다.

 그는 파독 광부 이선구(73)씨와 파독 간호사 이화자(69)씨 부부의 아들로 독일에서 태어났다. 생후 3개월 무렵부터 5세 때까지는 한국에서 외할머니 손에 컸다. 미국으로 이주한 부모를 따라 이후 시카고에서 성장했다. 하버드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무부 변호사와 검찰총장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시카고 대형로펌 ‘메이어 브라운’ ‘그리포 앤드 엘든’ ‘프리본 앤드 피터스’ 등에서 반독점, 통상규제, 지적재산권 관련 소송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가 연방판사에 추천된 이후 취임까지는 1년이 걸렸다. 지난해 7월 딕 더빈 연방 상원의원(일리노이, 민주)이 이끄는 공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11월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연방판사에 지명됐다. 올 1월 연방 상원 법사위원회의 청문회를 거쳐 5월 연방 상원의 인준을 통과했다. 이날 취임식은 제임스 홀더맨 판사를 비롯한 연방법원 일리노이 북부지원 선임 판사들이 리 판사를 맞이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관계자가 대신 읽은 축사를 통해 “리 판사는 맡겨진 임무를 잘 감당하면서 연방판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리 판사는 부인과 두 자녀가 배석한 가운데 대만계 에드먼드 챙 판사의 선창을 따라 취임 선서문을 낭독했다.

  특히 그를 추천한 더빈 의원은 “단칸방 임대 아파트에서 낯선 언어로 새 삶을 시작했던 리 판사의 개인사는 ‘아메리칸 드림’ 그 자체”라면서 “이는 리 판사 개인의 이야기일뿐 아니라 미국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한국계 연방판사는 작고한 허버트 최(1916~2004·한국명 최영조), 2010년 캘리포니아 북부지원 연방판사에 취임한 루시 고(43·한국명 고혜란)에 이어 세 번째다. 앞서 두 사람은 각각 하와이와 워싱턴 D.C에서 출생했다. 한인 1.5세가 연방판사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리 판사는 “다음 주 바로 이 법정에서 시민권 선서를 주재하는 것으로 연방판사로서 첫 공식 임무를 시작한다”고 전했다.

이후남 기자, [연합뉴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