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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눈’으로 세상 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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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최근 한 외국 가수의 내한 공연장. 초상권 등을 이유로 촬영을 철저히 통제하는 일반 공연과 달리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가수가 무대에 오르자 여기저기 휴대전화 카메라가 켜졌다. 흥이 오른 가수 역시 자기 휴대전화를 꺼내 객석을 촬영하며 즐겁게 응수했다. 공연 내내 상당수 관객은 휴대전화를 놓지 않았다.

 이런 풍경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연예인들을 만나면 당장 휴대전화부터 들이댄다. 진귀한 순간을 담아놓으려는 ‘인증샷’이다. 유치원 재롱잔치나 졸업식은 학부모들의 촬영대회다. 어린 자녀의 추억을 위해 한 장면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멋진 경치나 음식 앞에서도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든지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리기 위해서다.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추억거리를 만들며 공유하고 싶어서다.

 움베르토 에코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예전 여행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지만 인화해보니 엉망이고 정작 내가 무엇을 봤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 후에는 모든 것을 카메라가 아닌 내 눈으로 보기로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휴대전화나 카메라 없이 세상을 볼 수 없는 것 같다. 모든 경험을 인공 눈(artificial eye)으로 한다”고도 덧붙였다.

 사실 휴대전화로 촬영하며 공연을 관람한 관객은 스스로는 공연을 봤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본 것은 실제 무대가 아니라 휴대전화 화면에 잡힌 무대다. 음반이나 TV가 아닌 실제 가수의 라이브를 들으러 간 콘서트장에서조차 제 눈을 버리고 ‘인공 눈’으로 공연을 즐기기보다 찍은 것이다. 아마도 음악에 집중하기보다 얼마나 영상이 잘 찍히는지 적잖게 신경썼을 것이다.

 유치원 재롱잔치에서 자녀를 영상에 잘 담기 위해 우왕좌왕하다 보면 앞서 에코의 말처럼 결국 그 중요한 순간 자체는 누리지 못하고 나중에 돌이켜 보면 제대로 된 기억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눈을 대신하는 ‘인공 눈’과 ‘인공 눈(미디어)이 매개한 현실’만 있을 뿐 실제의 내가 겪는 현실 자체는 증발하고 마는 것이다.

 추억을 위해 열심히 찍어댄다지만 그것은 바꿔 말하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실을 일정 부분 훼손하는 것과 같다. 멋진 여행이나 식사의 순간 차제보다 그것이 추억이 되는 미래, 그것이 SNS에 공유된 순간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니까. 추억을 위해 각종 이벤트 만들기에 여념 없는 연인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여기’에 온전히 집중하기보다는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기록되고 보여질지에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현대인은 결국은 현실을 살 뿐이면서 스스로를 영원히 미래와 미디어의 노예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현대인의 이유 모를 피로와 불안도 상당 부분 거기서 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