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으로 전이된 암 크기 줄여 수술 가능 … 말기 대장암 환자에 희망의 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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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비툭스

직장인 박진욱(43·서울 강동구)씨는 2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아랫배가 항상 더부룩한데다 변을 보기 힘들어지자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대장암 4기였다.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돼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상황. 박씨는 절망했고, 가족을 불러 마지막 인사도 했다. 그러나 박씨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표적항암제로 암의 크기를 줄인 뒤 수술을 받았다. 최근 정기검진을 받은 그는 “암이 아직까지 재발하지 않아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으로 전이된 대장암 4기 환자도 효과=육식을 즐기면서 국내 대장암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중앙암등록본부자료에 따르면 전체 암환자의 13%는 대장암 환자다. 대장암은 일찍 발견하면 내시경·복강경 수술으로도 간단히 완치할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특이한 증상이 없다 보니 환자 대부분이 초기 단계를 놓친다. 많은 환자가 첫 진단에서 3기 이상 또는 간·폐·뼈·뇌 등으로 암세포가 전이돼 있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김태원 교수는 “병원에 오는 환자 중 50~60%는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며, 4기인 경우엔 전이율이 85%나 된다”고 말했다. 특히 간은 대장의 혈액과 림프액이 모여 쉽게 전이된다. 이 경우엔 대장과 전이된 부위를 함께 잘라내야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전이된 간의 침범 정도가 25% 이하면서 다른 장기로 전이가 없는 간 전이는 대장과 간을 동시에 잘라내 암 덩어리를 제거한다. 하지만 간 절제 조건이 까다로워 전이된 환자의 10~15%만 절제가 가능하다. 나머지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의 생존기간은 길어야 1년 이내다. 이런 간 전이는 대장암 환자의 가장 큰 사망원인 중 하나다.

 최근 이런 환자에게 표적항암제 얼비툭스(머크)를 기존 항암제와 함께 투여하는 병용요법이 주목받고 있다. 항암제 병용요법은 간으로 전이된 암세포의 크기를 줄이는데 효과적이다. 암세포 크기가 작아지면 간 절제술을 시행할 수 있다. 항암제+표적항암제 병용요법 후 수술로 암이 생긴 부위를 잘라내면 4기 암환자의 5년 생존율이 5%에서 50%로 높아졌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10년 생존율은 22~30%다. 절제술을 받지 않은 환자의 5년 생존율은 11%, 10년 생존율은 0%다.

 김 교수는 “간으로 전이된 대장암 환자는 KRAS 생체지표 검사로 본인에게 맞는 최적 맞춤치료를 받을 수 있다. 예전에는 치료가 불가능했던 대장암 환자에게 완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수술이 가능하도록 암 세포 크기 줄여= 얼비툭스의 첫 번째 기능은 암세포의 성장을 막는 것이다. 세포의 증식·생존·부착·이동·분화를 규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표피성장인자수용체(EGFR)의 신호를 차단한다. 특히 항암제와 방사선요법으로 손상된 암세포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돌고 억제하고, 암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형성도 차단한다.

  암세포는 정상 세포와 달리 통제 시스템이 붕괴돼 무한대로 성장한다. EGFR 신호체계의 핵심은 KRAS 단백질이다. 이 단백질은 암(종양)의 생존·혈관신생과 증식·전이와 관련된 신호를 전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KRAS 단백질은 EGFR 신호에 반응해 활성화한다. 약물효과를 예측할 수 있는 일종의 생체지표(Biomarker)다. 이때 얼비툭스가 신호전달 경로를 차단해 암세포의 성장을 방해하는 식이다. 정상이면 얼비툭스에 반응을 보인다. 대개 대장암 환자 중 65%는 정상형 KRAS를, 나머지 35%는 돌연변이형 KRAS를 갖고 있다.

 두 번째는 항체형 세포독성(ADCC) 반응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얼비툭스는 EGFR에 결합해 신체면역체계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 ADCC반응은 KRAS 상태 여부와 상관없어 돌연변이 KRAS 단백질을 가진 환자에게도 일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외에도 얼비툭스는 간으로 전이된 대장암 외에도 두경부 편평세포암(SCCHN)에도 효과를 보인다. 환자의 95%가 얼비툭스에 반응을 보이는 정상형 KRAS 단백질을 갖고 있다.

권선미 기자

◆표피성장인자수용체(EGFR)=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의 증식·생존·분화를 조정하는 신호체계의 첫 단계에 있는 수용체다. 폐암·대장암·두경부암의 발병과 진행에 관여한다. 암에서 EGFR이 발현된다는 것은 병이 악화하거나, 약효가 떨어진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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