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초보 감독 김 위원장, 영화 좀 찍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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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주리’ 촬영 현장의 김동호 감독.

10일 오후 서울 삼청동 아트선재 앞마당에 영화 촬영세트가 차려졌다. 제작비 2300만원의 작은 영화에 안성기·강수연 등 스타배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게다가 충무로의 거장 임권택 감독과 연극계의 대모 손숙이 카메오로 출연했다. 어떤 영화제도 한데 모으기 어려운 이들을 모아놓고 큐 사인을 날린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75) 명예집행위원장이다.

 부산영화제를 단기간에 세계적인 영화제로 성장시킨 그는 2년 전 물러나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꿈이 이뤄진 현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11월 열리는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의 개막작 ‘주리(JURY)’의 메가폰을 잡고 능수능란하게 현장을 지휘했다. 한 손에 무전기를 들고 감독 의자에 앉아 “컷! 이번엔 좋았어”라고 외치는 모습은 영락없는 노장 감독이었다.

 관객으로 깜짝 출연한 임 감독은 “전날 크랭크인한 초보 감독이 이렇게 능수능란하면 쓰나. 영화 좀 찍네”라며 애정을 표시했다. ‘주리’는 국제영화제 경쟁작 심사과정에서 벌어지는 심사위원들간의 갈등을 그렸다. 배우 안성기·강수연·정인기와 영국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 일본 예술영화전용관 이미지포럼의 토미야마 카츠 대표가 5명의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다.

 안성기와 강수연이 함께 영화에 출연한 건 ‘그대 안의 블루(1992)’ 이후 20년 만이다. 강수연은 깐깐한 성격의 심사위원을 연기하기 위해 헤어스타일도 쇼트머리로 바꿨다.

‘무산일기’의 박정범,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부터 임권택 감독까지 배우로 출연한 감독들의 리스트는 충무로의 역사 그 자체다. 제작진도 화려하다. ‘괴물’의 김형구 촬영감독(촬영), ‘만추’의 김태용 감독(조감독), ‘라디오스타’의 방준석 음악감독(음악) 등이 참여했다.

 또 ‘두만강’의 장률 감독이 김 위원장과 함께 시나리오를 썼고, 강우석 감독이 편집을 맡는다. 안성기는 “김 위원장을 위해 스타들이 무보수로 총출연했다. 충무로판 ‘어벤져스(미국의 슈퍼히어로들이 총출연한 할리우드 영화)’라 할 만하다”고 말했다. 토미야마 대표는 항공료도 자비로 냈다.

 김 위원장은 “한국 영화계가 함께 만드는 작품인 만큼 영광과 부담이 교차한다. 그림도 그리고,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끝없는 도전의 원동력은 뭘까. 해답은 현장에서 김 위원장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이란의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이 던져줬다. “겸손하면서도 추진력 있고, 에너지를 스스로 뿜어내는 인간 김동호가 궁금해서 다큐를 만들고 있어요. 왜 한국 감독들은 그의 다큐를 찍지 않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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