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버지니아 사흘째 암흑 … 주민들 전기 찾아 피난살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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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희
워싱턴 특파원

오늘로 사흘째다. 지난달 29일 밤 천둥·번개와 함께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천재지변이 시작됐다. 바람은 겁이 날 정도였다. 우산은 펴 들자마자 구겨져 버렸고 손가락만 한 빗방울이 얼굴을 때렸다. 그래도 한여름 밤 비는 시원했다. 낮 동안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에 지친 몸이어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강풍이 아름드리 나무를 두 동강 내고, 동강 난 나무가 전깃줄을 덮치면서 재난은 밀물처럼 다가왔다. 전기가 사람들의 생활을 이토록 깊고 넓게 지배해 왔는지 예전엔 생각도 못했었다.

 끊어진 전기는 사람들을 다른 세상 속으로 몰아넣었다. 에어컨이나 선풍기는 무용지물이었다. 사흘 동안 쌓인 빨래는 산더미가 됐고, 구겨진 와이셔츠를 다림질할 묘안은 없었다. 무엇보다 세상과 고립됐다는 외로움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인터넷이란 21세기 통신수단이 전기의 도움을 받지 못하자 사람들은 섬 속에 갇힌 조난자였다. 구멍 난 인터넷은 사람과 사람의 거리를 멀찌감치 떼어 놓았다. 미국에서 평균소득이 높은 가구가 산다는 버지니아주 매클린이지만 밤이 되자 칠흑 같은 어둠에 갇혔다. 버지니아주에서만 이렇게 지내는 사람이 78만6000가구나 된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피해가 덜한 지역에서부터 시나브로 전기가 연결됐다. 사람들은 환호를 질렀다. 하지만 금요일 밤의 강풍은 집 앞 골목 끝에 있는 어른 허리둘레만 한 나무를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그 서슬에 전선에 연결된 변압기가 땅에 떨어졌고, 그 여파로 기자네 동네는 여전히 암흑세상이다. 앞 집에 사는 백인 노부부는 끝내 딸네 집으로 피난을 갔다. 한 집 건너 사는 식구 많은 집은 아예 호텔로 들어갔다. 딸애와 아내는 한낮이면 더위를 피해 자동차를 타고 쇼핑몰로, 극장으로 피난살이 중이다.

 좋은 점도 있다.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단다. 복구가 일찍 된 집으로 더위를 피해 모이다 보니 덜 친했던 사람들과도 친해진다. 그나마 이렇게 버티는 건 물과 가스가 문제 없이 공급되고 있어서다. 있을 땐 몰랐다가 막상 없으면 절실한 건 이 세상에 공기 외에도 많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필수요소? 물, 가스, 전기다. 그중 으뜸은…. 지금으로선 전기다. 아직도 정전은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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