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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신동엽의 귀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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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오랜만에 맘껏 웃었다. 지난 주말 케이블 채널 tvN에서 방송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코리아2’를 보면서다. ‘성인 취향의 토크쇼’를 내세웠지만 그동안 ‘어느 대목에서 웃어야 할지’ 망설이게 했던 이 프로그램. 이날 구성이 특별했던 건 아니다. ‘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한 건 전적으로 신동엽의 힘이었다. 호스트를 맡은 그는 엉큼한 골프강사에서 방귀냄새 제거제 광고모델, 염불 대신 “자고 싶다” “자고 싶다”를 외는 변태 승려 캐릭터를 넘나들면서,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선보였다. 반응은 뜨거웠다. 프로그램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물론 ‘동엽신(神)’에 대한 칭송이 한 주간 인터넷에 넘실댔다.

 30대 이상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그의 데뷔 시절. ‘저게 바로 천재 아닌가’ 생각했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귀여운 외모의 개그맨이 “안녕하시렵니까”라는 인사와 함께 황당무계한 대사를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그에겐 무명시절이 없었다 한다. 1991년 SBS 특채 개그맨으로 데뷔하자마자 주목받았고,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등에서 비상한 재능을 드러냈다. MBC ‘러브하우스’의 진행을 맡으면서 MC로서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가 웃기지 않았다. 대마초 사건을 겪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실패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개인적인 어려움 속에도 꾸준히 방송에 출연했지만, 화면 속의 그는 무엇엔가 쫓기는 듯 불편해 보였다. 콩트 대신 리얼 버라이어티 위주로 변모한 예능 프로그램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감(感)이 떨어졌다” “한물갔다”는 말을 들었다.

 실종된 듯 보였던 감이 되살아난 건 최근의 일.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요즘 그는 다시 웃긴다. KBS ‘안녕하세요’ ‘불후의 명곡2’, SBS ‘동물농장’ ‘강심장’까지 주요 오락프로를 서서히 장악했다. ‘안녕하세요’에 음주운전을 자주 한다는 의뢰인이 나오자 “구치소, 거기 안 좋아요”라고 충고한다. 자신의 과거를 웃음의 소재로 삼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이야기다.

 누구나 슬럼프를 겪는다. 혼자만 느끼기도 하고, 남들이 먼저 눈치채기도 한다. 어쩌면 이건 슬럼프가 아니라 (있었기는 했나 싶은) 사소한 재능이 이미 소진됐다는 신호는 아닐까, 불쑥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올해로 마흔둘, 편안한 얼굴로 다시 반짝이기 시작한 신동엽의 귀환이 이토록 반가운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