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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분식회계 '대사면' 필요한가 [찬성]

중앙일보

입력

과거 기업들이 회계장부를 부풀리거나 조작한 사실을 스스로 밝힐 경우 올해에 한해 한시적으로 면죄부를 주는 것은 투명회계의 정착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면죄부는 우선 행정처벌을 면제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기업의 관련자는 물론 장부조작을 제대로 지적하지 못했던 회계감사인의 처벌도 면제하자는 것이다.

기업의 회계 장부조작은 일반인으로선 적발하기 어려울 정도로 교묘하게 이뤄지는 게 보통이다. 장부를 조작한 기업과 이를 감사했던 감사인의 협조가 없이는 감독당국도 분식회계 사실을 밝혀내기가 무척 어렵다. 따라서 면죄부를 줌으로써 기업과 회계감사인들이 스스로 장부조작 사실을 '고해성사' 토록 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2년 전 부실화한 기업을 개인적으로 분석.연구한 결과 부실기업들의 회계장부 조작은 한두차례, 단기간에 걸쳐 이뤄진 경우가 드물었다. 대부분 기업이 부실화하기 5년 전부터 장부 조작이 시작되었으며 결국 부도 등 기업이 망할 때까지 계속됐다.

기업이 한번 회계장부를 조작하면 조작 사실을 과감히 도려내지 않는 한 다음해, 또 그 다음해로 쌓여가며 더 큰 회계분식을 낳게 마련이다. 예컨대 한번 부풀려진 매출은 해를 넘겨도 계속 회수할 수 없는 매출채권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익도 한번 부풀려지면 다음해에도 이익잉여금이란 가공의 숫자로 장부에 계속 남게 된다.

면죄부를 주는 것은 초법적인 특단의 조치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는 소송 등으로 실효가 없을 수 있다. 물론 과거에 이미 분식회계로 처벌받은 기업주나 회계감사인이 있는 만큼 형평성의 문제가 나올 수 있고 국민정서에도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과거 부실을 한번에 털어낼 기회를 주지 않을 경우 대부분 국내 기업이 관행처럼 저질러온 크고 작은 회계장부 조작은 영원히 근절되지 않을 수도 있다. 부실을 감추기 위한 기업.감사인의 공모와 이를 적발하기 위한 감독당국 등의 숨바꼭질만 끊임없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면죄부는 최선은 아니지만 국내 현실을 감안한 효과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경제를 살리고 투명회계의 정착을 위해 장부를 조작한 이들의 고해성사를 받아들이는 국민적인 아량이 필요할 때다.

김경호 한국회계연구원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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