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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주방서 일하다 "전직 소령이었더라" 수근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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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소령으로 예편한 전모(48)씨. 그에게 전역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시점”이었다. 여기저기 알아보다 6개월 만에 서울의 모 호텔 주방에 취업했다. “사회 물정을 익힌다”는 호기도 있었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돕고, 연회가 열리면 수백 개의 접시를 세팅하는 박봉의 ‘도우미’였다. 그러나 그런 일자리조차 6개월 만에 그만뒀다. 어떻게 알았는지 주방 직원들이 ‘전직 소령이었다더라’며 수군댔기 때문이다.

그는 호텔을 나온 뒤 올해까지 3년간 모두 7곳의 1년짜리 계약직을 전전했다. 군 복무 중 신문방송학 석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보훈병원 시설관리직, 홈쇼핑의 물류센터에서 일했다. 그는 “정규직은 절대 기회가 안 왔다. 뭘 해도 1년짜리”라며 “뭐라도 좋으니 안정적인 직장이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금 그는 공공기관의 조사역 업무를 하고 있다. 내년 초면 그만둬야 하는 단기계약직이다.

소령으로 예편해 방산업체에 근무 중인 이모(43)씨는 “나는 운 좋게 군에서 하던 업무와 연관성 있는 회사에 취직했지만 앞서 대위로 전역한 3사관학교 동기들은 취업을 거의 못해 대부분 보험 외판 일을 시작했다”며 “그마저도 지인들의 보험 가입이 다 끝날 때면 다시 다른 임시직으로 바꿔야 했다”고 한숨 쉬었다.

경쟁 치열한 예비군 중대장도 180만원
2004년 중령으로 전역한 이모(60)씨는 지금 지방 도시 고등학교의 기숙사 ‘사감’이다. 학생들이 자율학습을 끝내는 오후 10시30분에 맞춰 출근했다가 밤을 새우고 아침에 퇴근하는 월급 100만원의 야간직이다. 학생들의 일탈을 막고 시설을 관리한다. 그는 “전역 후 취업하려 무진 애를 썼지만 내게 OK를 보내는 곳은 없었다”며 “결국 집사람은 자동차 보험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감’ 일에 앞서 그는 지방대 기숙사의 경비 자리, 중소기업의 생산직에도 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퇴짜 맞았다.

지난해 5월 21년6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상사로 제대한 김모(43)씨는 치밀하게 전역 후를 준비했다. 군에서 대형 트레일러 면허를 땄고 전역을 전후해선 굴착기ㆍ지게차 등 7개의 중장비 자격증을 획득했다. 덕분에 반년도 안 돼 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가 매달 받는 실수령액은 180만원이다. 김씨는 “굴착기는 초짜가 120만원, 지게차는 160만원인데 그래도 나는 면허가 있어 180만원”이라며 “채소와 쌀은 농사짓는 연천의 친척들이 대주고 월말이면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정식 직원이니 만족한다”고 말했다. 서울 제대군인지원센터에 따르면 전역자들이 몰려 가장 경쟁이 치열한 예비군 중대장 자리도 대학의 경우 월급이 180만원 수준이다.

20년 못 채워 연금 없는 전역자도 많아
전역 장교들이 버티는 마지노선은 군인연금이다. 호텔 주방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소령 출신 전씨는 “매달 200만원씩 받는 연금으로 먹고산다”고 말했다. 상사 출신 김씨는 연금 130만원에 월급 180만원을 합쳐 생활한다. 그러나 연금은 극빈층 전락을 막는 마지노선일 뿐 생활의 마지노선은 아니다. 소령 출신 전씨는 “전역 후 1년도 안 돼 퇴직금 8000만원을 큰애 대학 등록금과 전셋값으로 다 썼다”며 “지금 연금에 월급을 합쳐도 300만원이 조금 넘는 정도라 올가을에 은행에서 300만원 한도의 생활안정자금 대출을 또 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200만원만 받으면 감사하겠다는 게 그의 얘기다. 2010년 10월 소령으로 예편한 김모(45)씨는 “고3인 아들이 ‘아빠가 빨리 안정된 직장을 찾아 엄마가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 그렇게 가슴 아플 수 없었다”며 “지난 20여 년간 가족보다 나라가 우선이라고 믿고 살았는데…”라고 말을 흐렸다.

더 심각한 이들은 연금도 없는 전역자들이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전역한 장교·부사관 2만9090명 중 20년을 채우지 못해 연금 수급 자격이 없는 이들은 1만4649명(50.4%)이다. 9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올해 4월 전역한 중사 출신 박모(32)씨는 지금 군무원 시험 준비에 올인한다. 그는 “전산ㆍ정비 분야 군무원 시험은 경쟁률이 최소 10대 1에서 20대 1”이라며 “앞으로 1년간 퇴직금 2600만원을 어떻게든 안 쓰면서 학원 말고는 집에 틀어박혀 공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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