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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거래소 살길은 하루 24시간 개장”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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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호 27면

조용철 기자

-그리스 위기가 최악 국면을 넘어서자 주가가 반등했다. 하지만 국내 투자자들은 언제 또 외국인들이 증시에서 돈을 빼갈까 불안해한다.
“국내 증시의 외국인 비중은 30% 이상이다. 이들의 자금 유·출입에 따라 주가가 출렁일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ATM 증시’라느니 걱정이 많지만 나는 꼭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는다. 변동성이 큰 시장은 그만큼 외국인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시장이라는 방증이다. 유동성이 풍부하니까 수시로 돈을 넣고 뺄 수 있는 것 아닌가. 꼭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다만 조바심이 문제다. 외국인 자금이 빠져 주가가 떨어지면 불안한 마음에 손절매한다고 주식을 마구 판다. 장기 투자에 대한 투자자 계도와 교육이 필요하다.”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 인터뷰

-MSCI 선진시장지수 편입에 네 번째 도전하는데 비관적 전망이 많다(인터뷰 사흘 뒤 21일 한국 증시는 이 지수 편입에 실패했다).
“MSCI 지수 운영회사 측은 외환자유화 등 한국 외화관리제도를 문제 삼는다. 그건 국익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다. 우리 증시의 발전을 위해 MSCI 선진지수 편입은 빠를수록 좋다. 하지만 거기 빨리 속하지 못한다고 안달할 필요는 없다. 한국은 이미 MSCI 이머징시장 지수에 편입돼 있는데 거기서 빠져 선진시장지수에 들어간다고 외국인 투자자금이 확 늘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우리 증권시장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상장기업의 시가총액으로는 세계 16위다. MSCI 선진시장지수 편입 24개국 중 시가총액이 한국보다 큰 나라는 9개국뿐이다. 미국·일본·영국·홍콩·캐나다·프랑스·독일·호주·스위스 정도다. 스페인·싱가포르·네덜란드도 우리보다 작다.”

-하지만 투자자가 체감하는 종합적 위상은 그보다 낮은 듯하다. 특히 미국·유럽 등 선진국 거래소들이 인수합병(M&A)을 통해 대형화하는 추세다.
“2007년 뉴욕증권거래소와 유로넥스트(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 3개국 통합거래소)가 합병한 뒤 대형화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내년 일본에서는 도쿄거래소와 오사카거래소가 합친 일본거래소가 출범한다. 이 때문에 신흥국들의 고만고만한 거래소 입지가 좁아졌다. 그런 거래소들의 탈출구는 교차거래다. 교차거래란 여러 나라 거래소가 제휴 등을 통해 상대방 증시의 주식이나 파생상품을 실시간으로 매매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한국거래소도 그쪽으로 나가야 한다. 미국은 물론 유럽·아시아·남미 주요 상장 주식을 국내 투자자들이 24시간 거래할 수 있게 만들겠다. ‘해가 지지 않는 거래소’가 한국거래소의 미래 수종사업이다.”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
“지금도 미 시카고상업거래소(CME)와 연계한 야간 선물시장이 국내에 활성화돼 있다. 교차거래의 직전 단계다. 앞으로는 아시아와 동유럽에 이어 남미까지 금융영토를 확장하겠다. 페루에 진출하기로 돼 있다. 금융 한류를 만들어보자. 신흥국 증시를 벨트화하는 역할을 한국거래소가 주도하겠다. 그렇게 하면 구미·일본 등지의 거대 선진 거래소에 맞서 투자자를 끌어모을 힘을 얻을 수 있다. 이를 위해 한국거래소는 신흥국에 주식거래 전산시스템을 수출하고, 해당국 거래소의 지분을 취득하는 윈윈 전략을 펴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진출한 나라는 지난해 라오스·우즈베키스탄과 올해 캄보디아 등이다. 네팔을 비롯해 동구의 벨라루스·아제르바이잔도 협력하기로 돼 있다. 페루가 성사되면 남미 첫 진출 사례가 된다.”

-거래소 위상을 높이려면 해외의 우량 기업을 유치해야 한다. 홍콩 증시에는 프라다·코치 등 명품 기업이 상장돼 있다. 우리 거래소 외국기업 상장사는 16개로 당초 목표를 훨씬 밑돈다. 그나마 중국 기업에 편중돼 있다.
“앞으로 기대해도 좋다. 한국거래소가 진출했거나 진출할 나라의 우량 기업들이 한국을 찾을 것이다. 카자흐스탄·브라질·터키 등지의 국영기업이나 A급 기업들이 유치 대상이다. 또 각국 거래소와 협약을 맺어 우량 업체를 우리나라와 해당국 증시에 동시에 올리는 2중 상장(Dual listing)이나 해당국 우량 업체를 한국 증시에, 한국 우량 기업을 해당국에 상장시키는 교차 상장을 활성화하겠다. 그리스 거래소와는 이와 관련한 합의를 했다. 그리스는 요즘 유럽 재정위기의 진앙지가 되고 있지만 세계적 선박·해운 강국이다. 그리스 선박회사들의 국내 증시 상장이 구체화하고 있다. ‘포브스 2000대 기업’에 속한 글로벌 유명 기업들도 한국에 상장할 날이 머지않았다.”

-지난 2월 대주주의 횡령·배임 혐의가 드러난 한화를 거래정지시키지 않아 논란을 빚었다. 규모가 작은 코스닥기업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면 곧바로 거래정지하는 게 통례였다. 형평성 시비가 있었다.
“사안마다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코스닥기업의 경우 대주주가 100억원 정도 횡령했다면 기업의 존망이 위태롭다. 거래정지는 해당 회사를 징벌하기보다 투자자를 보호하는 관점이 더 중요하다.”



김봉수 고려대 법학과를 나와 쌍용투자증권·SK증권·키움증권 등을 거쳤다. 증권사 전문경영인으로 드물게 한국거래소 이사장에 2009년 선임됐다. 키움증권을 10년간 이끌면서 반석에 올려놨다는 평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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