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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바라크 사망설 퍼진 날 … “군부 타도” 민심 폭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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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9일(현지시간)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사망설이 퍼지기 수시간 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수만 명이 운집해 반(反)군부 시위를 벌였다. 이 집회는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무함마드 무르시 후보를 지지하는 무슬림 형제단이 조직했다. 이들은 군부가 민선 대통령에게 정권을 이양한 뒤에도 권력을 유지하는 장치들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이로 AP=연합뉴스]

호스니 무바라크(84) 전 이집트 대통령이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다고 이집트 언론들이 보도했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집트 정부 관계자는 “한때 인공호흡기에 의존했으나 현재는 자가 호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바라크는 19일 오후(현지시간) 교도소 병원에서 카이로 남부 지역 마아디의 군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집트 관영 메나(MENA) 통신은 병원 후송 직후 “무바라크의 심장 박동이 멈췄으며, 임상적으로는 사망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후 정부 관계자는 “혼수 상태이나 사망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30년 독재를 펼쳤던 무바라크는 지난해 2월 하야를 선언한 뒤 홍해의 휴양지 샤름 엘세이크의 별장에 머물다 반년 뒤부터 법원의 명령으로 카이로의 병원에 연금된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그 뒤 지난 2일 징역 25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 내의 병원에 수감됐다.

 무바라크의 건강 상태는 지난 16∼17일 치러진 대통령선거 뒤 다시 혼란에 빠진 이 나라의 정치 상황에 새로운 주요 변수로 등장했다. 무바라크 신병 처리 문제는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는 군부에 ‘뜨거운 감자’다. 이집트에 널리 잔존하고 있는 무바라크 추종 세력은 고령이고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그가 교도소가 아니라 일반 병원이나 요양소로 보내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에 군부와 대립하고 있는 무슬림 형제단과 혁명 주동 세력들은 군부와 법원이 무바라크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반발해 왔다.

 이에 따라 무바라크가 군 병원에 오래 머물 경우 군부가 그의 건강 악화를 가장해 대통령 당선자 발표 직전에 수감 상태에서 빼내려 했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관영 통신이 서둘러 “임상적 사망”을 언급한 것도 군부의 ‘술책’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무바라크가 사망하면 군부가 무바라크 문제에서 자유롭게 돼 그에 대한 심정적 지지를 보여온 국민들에 의해 군부의 영향력이 강화될 수 있다. 현지의 진보적 신문 알마스리알윰은 “이집트에는 군·경찰을 포함한 공무원 등 최소 900만 명이 아직도 무바라크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해 왔다.

 무바라크의 사망설이 퍼지기 수 시간 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수만 명 규모의 반(反)군부 시위가 벌어졌다. 이슬람 정치 세력인 무슬림 형제단이 조직한 것이다. 이들은 군부가 민선 대통령에게 정권을 이양한 뒤에도 막강한 권력을 유지하는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며 ‘전면적 투쟁’을 선언했다.

 이와 관련, 군부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도 포착됐다. 이집트 일간지 알아흐람 인터넷판은 “카이로 진입 길목인 순환도로 인근의 카이로~알렉산드리아 농업 도로에서 군용 차량이 목격됐다”며 “탱크와 장갑차 등이 고속도로를 타고 수도를 향해 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군인들은 이를 목격한 이들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며 “군용 차량이 모이는 곳은 지난해 아랍의 봄 때 카이로 진입 차량의 통제가 이뤄졌던 곳”이라고도 했다.

 이집트 군최고위원회(SCAF)는 최근 임시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의 군사력 동원 권한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대선 결과는 21일 발표된다. 현지 언론들은 무슬림 형제단의 후보 무함마드 무르시(61)의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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