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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 자리한 한폭 동양화' 영주 취한대

중앙일보

입력

경북 영주시에서 부석사 쪽으로 이십 리쯤 가면 오른쪽 들판에 예사롭지 않은 소나무 숲이 있으니 조선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자리입니다. 서원 앞으로 죽계천이 흐르고 그 건너편에 정자 하나가 나그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우리 옛 건물의 특징이 '잘생긴 집'이 아니라 '주변과 잘 어울리는 집' 이라고 합니다만, 퇴계 이황이 지은 취한대(翠寒臺)만큼 기막히게 자리를 잡은 건물도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선조 중종 37년(1542)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은 후임 군수인 이황의 요청으로 나라에서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아 최초의 사액(賜額)서원, 즉 국가 공인 사립대학이 됩니다. 성리학을 기본으로 하는 서원 교육은 무척 엄격해 세가지 금기 사항이 있었으니 여자와 술, 광대패의 출입이었습니다. 그러나 원생이 과거에 급제하면 서원에서 잔치를 벌일 수 있는데 그때 개방되는 장소가 정자나 누각이었습니다.

다른 서원의 누각이 서원 내부에 있는 것과 달리 취한대는 강 건너편에 있어 공부에 지친 유생들이 원장이나 선배들의 험담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거나, 금기를 어기면서 탁주 몇 잔으로 서로의 우애를 다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강가에 소나무 한 그루가 빼어난 자태로 서있어 취한대와 어울려 한폭의 그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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