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개·폐회식 물량공세 않고 감동 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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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임권택 감독(왼쪽)이 19일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총감독으로 위촉됐다. 오른쪽은 인천 아시안게임 김영수 조직위원장이다. [뉴시스]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76) 감독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폐회식의 총감독을 맡았다.

 ‘씨받이’ ‘서편제’ ‘취화선’ 등 50년 영화인생에서 100여 편의 영화를 만들어 온 그가 아시안게임과 같은 국가적 행사를 연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김영수 위원장)는 19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임 감독에게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총감독 위촉장을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임 감독이 한국의 정서와 미(美)를 가장 잘 표현하는 감독이라고 판단해 그를 선임했다”고 말했다.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라는 슬로건으로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은 2014년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16일 동안 열린다. 위촉식 행사가 끝난 뒤 임 감독을 만났다.

 - 총감독직을 수락한 이유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다큐멘터리 작업에 참가했었다. 공산권(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자유진영(1984년 LA 올림픽)이 따로 올림픽을 치르다가 서울 올림픽 때 양 진영이 모두 참여했다. 이데올로기를 넘어 전 세계가 하나가 됐다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선수단 입장 순서대로 편집하지 않고, 양쪽 진영으로 나눠 편집했는데 채택되지 않았다. 애써 만든 작품이 빛도 보지 못한 그때의 실패를 만회하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 그때 경험이 그렇게 아팠나.

 “그때 기억이 지금까지도 트라우마처럼 나를 괴롭혀왔다. 영화작업과는 별도로 말이다. 이후 모든 올림픽 개·폐회식을 꼼꼼히 챙겨보며 그때의 실패를 곱씹곤 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내 영화가 사회에 밝고 건강한 기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번 행사를 통해 나라를 위해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 중국의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의 총감독을 맡았고, 영국의 대니 보일 감독이 다음 달 열리는 런던 올림픽 개막식을 총지휘한다. 그런 점이 부담스럽지 않나.

 “왜 안 그렇겠나. 그런 거장 감독들의 개회식 작품과 비교될테니 말이다. 특히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물량공세를 퍼부어 개·폐회식을 장대하게 치러내지 않았나.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걸 넘어서야지. 물량공세로 화려하게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를 흉내낼 필요도 없다. 그런 스펙터클한 행사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물량공세에 기대지 않고도 감동을 주는 개·폐회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 그간 영화를 통해 표현한 한국적 요소를 응용할 수 있지 않나.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40여 개국의 전통과 문화를 표현해 소통과 미래의 희망을 보여주려 한다. 거기에 우리 고유의 문화를 아름답고 조화롭게 얹어내는 게 관건이다. 나는 80살에 가까운 노감독으로서 깊고 묵중한 세계를 담아내고, 그걸 젊은 연출가들과 CG(컴퓨터그래픽) 전문가들이 화려하고 멋지게 포장해내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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