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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상황의 시금석 '시스코를 주시하라'

중앙일보

입력

성공적인 대기업을 이룩하는 방법에 대한 청사진을 제공하는 하이테크 기업이 있다면, 바로 시스코 시스템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토록 많은 투자자들이 시스코를 문제있는 기업인양 취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스코는 분명 고유한 문제를 갖고 있다. 그중 대부분은 CEO인 존 챔버스 자신이 최근 몇 주 동안 되풀이해 경고했던 사실이다. 네트워킹 대기업인 시스코는 최근의 수입 보고가 애널리스트 전망에 못미치는 바람에 주가가 폭락하는 등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가장 가혹한 시스코 비평가들조차도 시스코를 죽어 가는 산업에서 비틀거리는 회사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산업의 모든 부분에 있는 최고 경영자들은 시스코의 사업 실적을 닮아가기 시작한 성장률을 무마시킬 것이다.

지난 9일 시스코 주가는 52주 최저가인 28.19달러로 마감됐지만, 이 회사의 시장가치는 여전히 2천억 달러를 상회한다.

비록 지금은 거의 중단됐지만 최근까지 시스코는 분기마다 4500명의 직원들을 신규로 채용해왔으며, 연성장율은 수년 동안 계속해서 산업 평균을 능가해왔다. 시스코는 2000년 회계연도에 55% 성장했다.

이 모든 것은 네트워킹 산업 지도자인 시스코의 번영을 보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곳에 바로 문제의 핵심이 있다. 주식 시장에서의 기업 평가에 관한한 무엇이 사실과 일치하는가는 파악하기 힘들다.

에포크 파트너즈(Epoch Partners)의 애널리스트인 세스 스팰딩은 "월스트리트는 종종 집단적 사고방식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 투자자들은 타성적이다. 그들은 기업이 예상 실적을 유지하는한 주식 평가가 어떤지는 괘념치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회사에서 부정적인 뉴스가 나오면, 그 부정적인 뉴스가 실제 현실을 뛰어넘는다. 시스코는 결국 그동안 형성돼온 높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시스코가 형편없는 회사는 아니지만 나는 시스코가 향후 분기에 대한 예상 실적에 근거해 평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스코의 현재 PER(price-to-earnings ratio)은 44로써, 최고 기록인 1999년 12월의 102에서 많이 하락했다. PER은 향후 4분기 동안의 예상 주당 수익으로 주가를 나눈 값이며, 주식이 과대평가됐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일반적인 벤치마크다. 참고로 IBM의 PER은 25, MS의 PER은 34이다.

PER이 높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그 회사의 수익이 빨리 증가해 높은 주가를 정당화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음을 암시해준다.

누구에게 의견을 묻느냐에 따라 시스코는 상당히 과대평가되고 재력 이상으로 성장하고 있는 회사로 평가되거나, 혹은 굉장한 성공적인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그 주식은 근시안적이고 비현실적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부당한 대접을 받는 회사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샌포드 C. 번스타인 앤 컴퍼니(Sanford C. Bernstein & Co.) 애널리스트인 폴 사가와(Paul Sagawa)는 "10년 앞을 내다보고 투자한다면, 시스코에 대한 투자는 현명한 선택이다. 하지만 1년 앞을 내다보고 투자한다면, 지금으로써는 경기 하향세 때문에 썩 좋은 선택이 못된다"고 밝혔다.

그들은 정말 준비됐는가?

월스트리트 분석에도 불구하고, 이 기업은 세계적인 기업 전략, 경영, 전문성의 모델로서 인식돼왔다. MS나 오라클처럼 산업 폭력 내지 기업의 오만으로 유명해진 여타의 테크놀로지 대기업과는 달리, 시스코는 비교적 단조로운 제품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고수하기 위해 악착같이 일해온 기업으로서 명성을 얻었다.

인터넷 붐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 회사를 관찰해온 많은 사람들이 볼 때, 일반인의 인식 변화를 가져온 주범은 실리콘 밸리가 아니라 월스트리트다.

메타 그룹(Meta Group)의 평가에 따르면, 분기별 수입과 수익성에 있어서 시스코의 전년대비 성장률은 분명히 인상적이지만, 이 회사의 역사적인 성장률에 비하면 상당히 하락한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시스코 지지자들은 시스코가 속해있는 산업을 괴롭히는 문제들을 시스코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그런 결론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광범위한 애널리스트 커뮤니티는 처음부터 예상 수익을 낮췄어야 했다. 지난 1월 챔버스는 두 차례에 걸쳐 판매부진 때문에 2사분기의 회사 실적이 저조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에 통보한 바 있다.

강력했던 시스코조차도 텔레콤 기업들의 도산과 기존 네트워크 운영업체들의 지출 감소, 미국 경제 우려에 기인한 일반적인 불안감 속에서 평상시의 속도로 계속 성장할 수 없다는 징조가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시스코는 회사 역사상 가장 부진한 수입증가 시기에 돌입하고 있다. 향후 2분기 동안의 판매는 계속 변동이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에 시스코 경영진들은 이번 회계연도의 수입증가 전망을 50~60%에서 40%로 낮춰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부진한 경제, 텔레콤 서비스 제공업체들에 대한 네트워크 장비 판매의 전반적인 하락, 쥬니퍼 네트웍스(Juniper Networks)와 레드백 네트웍스(Redback Networks)같은 소규모 틈새시장 참여 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 시스코 최고위급 경영진들의 두뇌 유출 등을 현재 시스코의 재정적 곤란을 야기한 주요인으로 꼽고 있다.

사가와는 "이것은 시스코도 사람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모든 기업들은 그들이 몸담고 있는 산업의 경제적 활력에 의해 영향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기업은 고객들이 성장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는 성장할 수 없다. 어떤 기업이 60%의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다면, 그 이상의 성장율을 확보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탈이냐 붕괴냐

부진한 경제에도 불구하고 챔버스는 시스코가 규모가 적은 경쟁업체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런 경쟁업체들은 틈새시장 제품에는 강하지만 시스코가 갖고 있는 제품의 깊이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챔버스는 이번 주에 열린 애널리스트 회의통화에서 지난 7년 동안 시스코가 참여하는 분야가 앞으로 매년 30~50% 성장할 것이며, 시스코도 그런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챔버스는 시스코를 성장시킬 신규 시장이 많이 있다고 역설했다. 이를테면 웹을 통한 컨텐츠를 촉진시키는 네트워킹 하드웨어, 사업체들이 인터넷을 통해 전화를 걸 수 있게 만드는 장비같은 것이다.
챔버스는 "우리는 시장 변동과 상관없이 독립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시장 추세가 이탈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엔터프라이즈 및 서비스 제공업체들 속에서 강력하다. 하지만 우리의 많은 경쟁업체들은 한 가지 사업에 주로 치중한다"고 말한다.

로버슨 스테판즈(Robertson Stephens) 애널리스트인 폴 존슨은 이견을 보이면서 "시스코는 쥬니퍼 네트웍스, 레드백 네트웍스, 익스트림 네트웍스같은 경쟁업체들에게 시장 점유율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고속 네트워크 라우터 시장에서 쥬니퍼는 불과 2년만에 시장의 30%를 장악했다. 이 시장은 시스코가 그동안 아무도 시스코를 상대로 경쟁할 생각을 못했을 만큼 지배적이었던 분야다.

텔레콤 기업들의 수요 감소

시스코는 지난 2년 동안 텔레콤 기업들의 수요를 다루기 위해 의욕적인 전략을 펴기 시작했다. 텔레콤 기업들은 그들의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매년 수십 억 달러를 소비한다.

시스코는 그런 전략을 통해 노텔 네트웍스, 루슨트 테크놀로지, 시에나(Ciena) 같은 새로운 업체들과 경쟁을 시작했다. 시스코는 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그럭저럭 100억 달러 이상을 소비했다. 하지만 시스코가 이런 전략을 구사하자마자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수요가 오히려 줄어드는 것 같다.

시스코의 캐리어 비즈니스 전략은 DSL 서비스 제공업체와 인터넷 데이터 운영업체같은 새로운 신규 캐리어쪽에 집중돼있다. 이런 업체 중 일부는 재정적 곤란을 겪고 있다.

서비스 제공업체들이 흑자로 전환하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에 시스코는 네트워킹 장비를 예전처럼 많이 판매하지 못한다. 더욱이 이 회사는 터무니없이 많은 금액을 의심스런 일부 기업들에 대출해줬다. 하지만 시스코는 자사 고객의 재무관행이 보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가와는 "시스코 주식 구매에 찬성하는 주장은 인터넷에 대한 수요가 무한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광대역은 그처럼 빠르게 나오지 않고 있으며 사람들은 인터넷을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사용하지는 않는다. 성장 속도는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수요가 무한하지 않다면, 그와 같은 경제적 법칙은 세계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에 적용된다"고 밝혔다.

많은 투자자들은 시스코가 비즈니스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캐리어 시장을 석권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들은 이제 그런 예상은 빗나간 것 같다고 주장했다. 시스코는 몇몇 공급업체 중 한 기업에 불과할 것이다. 시스코가 유일한 라우터 제조업체였던 과거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낙관적인 전망을 가능케 하는 이유도 있다. 텔레콤 지출은 모든 어둡고 암울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올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예상보다는 낮은 속도다.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운영업체들은 지출의 대부분을 좀더 새로운 인터넷 중심 장비쪽으로 돌리고 있다. 이것은 시스코의 전문분야와도 맞아떨어진다.

최근 일부 유명한 경영진의 이탈과 시스코 엔지니어링 부대에서 신생기업에 대한 관심 증가에도 불구하고, 시스코는 뿌리 깊은 전통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전통은 이 회사 주가가 최근 몇 년 동안 매년 두 배로 증가해온 이래로 더욱 심한 압력을 받을 수 있다. 올해는 이런 식의 주가 상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엔 챔버스가 있다. 그는 테크놀로지 산업에서 훌륭한 동기 부여자이면서 고객 지향적인 최고 경영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들이 하는 사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에포크(Epoch) 애널리스트인 스팰딩은 챔버스가 향후 2분기에 대한 예상 실적을 너무 많이 낮췄기 때문에 시스코는 그 수치를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스코는 월스트리트가 이 회사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스팰딩은 "챔버스는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고 있으며 월스트리트를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는 실망시키고 싶어하지 않지만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이다.

사실 그는 더 좋은 실적을 전망하고 있다. 그것은 전망을 어떻게 내놓느냐 하는 문제다. 시스코는 그 일에 아주 능숙하다"고 꼬집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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