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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맑음', 누구나 꿈꿔봄직한 사랑에 관한 로맨티시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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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엔 아라키 노부요시라는 사진작가가 있다. 그의 사진은 한번 본 사람이라면 잊기가 쉽지 않다. 역동적인 포즈와 원색의 배합. 그는 일상에서 뭔가 특별한 '순간'을 포착할 줄 아는 사진작가다.

일본영화, 하면 아직도 '러브레터'의 선명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오겡끼데스까"의 주인공, 나카야마 미호가 새로운 영화로 국내 극장가를 찾는다.

'도쿄맑음'은 멜로드라마다. 그런데 좀 수상하다. 별다른 사건없이, 물 흐르듯 진행되는 이 영화는 흔히 말하는 최루성 멜로드라마에 익숙한 이에겐 생경한 체험이 될지도 모른다. 한없이 느리고 심지어는 절정부도 없는 영화다.

뜻밖에도 영화감독은 이름을 대면 알만한 인물. '으랏차차 스모부'와 '쉘 위 댄스'의 배우 다케나카 나오토가 감독한 '도쿄맑음'은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사진작가 시마즈와 부인 요코는 사이좋은 커플이다. 별다른 일없이 무던하던 살던 이들이에게 어느날 뜻하지 않은 불행이 다가온다. 요코가 아무 말없이 집을 나가고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등 정신적으로 불안한 증세를 보이는 것이다. 처음엔 무심코 그녀의 말을 흘려들었던 시마즈도 요코가 이웃집 아이에게 이상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곤 놀란다. 심지어는 회사에 연락없이 결근하는 요코의 행동에 시마즈는 불안감마저 느끼기 시작한다. 부인에게 여행을 제안하는 시마즈. 둘은 마치 다시금 신혼을 맞이한 것처럼 정겨운 한때를 보낸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요코는 우연히 교통사고를 당한 뒤 갑작스레 세상을 뜨고 시마즈는 홀로 남게 된다.

'도쿄맑음'은 풍경이 부각되는 영화다. 영화 내내 은은한 파스텔톤이 화면에 흐르고 있으며 작은 소품에서 도쿄 시내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장면이 정갈하기 이를데없다. 예쁜 사진첩을 넘겨보는 듯한 미장센이라고 해야할까. 조용히 읊조리는 배우 겸 감독 다케나카 나오토의 독백에 실려, 이같은 화면이 영화 내내 지속된다. 물론, 사랑의 독백이다.

다케나카 나오토 감독이 '도쿄맑음' 작업에 착수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아라키 노부요시가 연재하던 글을 읽고 영감을 받은 것이다. 원래 아라키 노부요시는 부인인 요코와 함께 글과 사진을 함께 연재하는 기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부인의 죽음으로 그는 홀로 작업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는데 다케나카 나오토가 이를 읽고 감동한 것이다.

영화는 결말로 향하면서 다소 감상의 과잉 상태에 이른다. 특히 부인의 죽음 이후 아라키 노부요시 역의 다케나카 나오토가 회상에 잠기면서 감동을 강권하는 대목들은 약간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한 예술가의 삶, 그의 불완전한, 그리고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사랑의 이야기는 영화의 체념적인 정서와 결합하면서 쓸쓸한 비극으로 마감된다.

'도쿄맑음'은 처절한 멜로드라마는 아니지만 누구나 꿈꿔봄직한 사랑에 관한 로맨티시즘을 엮어낸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이같은 점엔 나카야마 미호라는 일본영화계의 스타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음이 자명하다. 화면 구석에 있더라도 스크린을 빛나게 하는 그녀의 존재감은 그만큼 '도쿄맑음'이라는 영화에서 특별하다고 할만하다.

'도쿄맑음'엔 기이한 카메오들이 등장한다. '링' 시리즈의 나카다 히데오, '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 '철남'의 츠카모토 신야 등이 배우로 잠깐씩 얼굴을 비춘다. 그리고 얼마전 국내에 소개된 '4월이야기'의 마츠 다카코 역시 조연급 배우로 나타난다. 이러한 카메오들의 등장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도 영화를 감상하는 방법이 될 것 같다.

실내악풍의 음악도 좋다. '마지막 황제'와 '고핫토'의 사카모토 류이치가 편곡을 담당한 영화음악은 영화의 결말, 즉 나란히 서있는 한쌍의 해바라기를 배경으로 하면서 사연많은 어느 부부의 이야기를 끝까지 지켜본 이들에게 잔잔한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다. 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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