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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는 세상에 앞서 근심하고, 가장 늦게 누리라 했거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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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호 14면

1 장쑤성 최고의 명문 고교로 꼽히는 쑤저우 고등학교.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1035년 이 학교 터에 일종의 공립학교인 ‘소주주학(蘇州州學)’을 설립한 범중엄(范仲淹)의 동상과 마주친다. 2 중국 대도시엔 공자를 모시는 문묘가 하나씩 있다. 쑤저우 고교 옆 문묘. 3 문묘 옆에 있는 비석박물관.

쑤저우(蘇州)에 가면 쑤저우 고교에 들러보고 싶었다. 장쑤(江蘇)성 최고의 명문 고교인데 천 년의 역사가 있다고 해서 귀가 솔깃했다. 내 중국어 선생 주저원과 그의 친구 샹원이 이 학교를 나왔다는 개인적 인연도 있다. 사전에 연락하지 않아 학교에 들어갈 수 없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내게는 쑤저우 토박이 출신 ‘다오유(導游·관광안내원)’ 샹신원이 있다.

홍은택의 중국 만리장정 ⑦ 쑤저우 고교와 옛 과거시험장

정문이 열려 있어 교정을 촬영하려고 하자 수위가 가로막았다.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샹이 나섰다. “한국에서 온 유명한 작가인데….” 대충 그런 요지로 얘기하는 것 같아 약간 권위 있는 표정을 지었다. 곧바로 교내 진입은 물론 선생님과의 인터뷰까지 성사됐다. 교정으로 들어가자 오래된 교사를 배경으로 범중엄(范仲淹)이 서 있다. 북송시대의 학자이자 정치가. 그는 황실 내 외척의 발호와 탐관오리들의 부패를 척결하고 민생고를 덜어주는 신정(新政)을 실시하다 모함을 받아 조정에서 쫓겨난 인물이다.

교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해준 이는 국어교사인 장펑(張峰). 그는 1035년 범중엄이 소주주학(蘇州州學)을 세운 데서부터 학교의 역사가 시작됐기 때문에 그의 동상이 세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터이고 역사가 중단되지 않았고 그리고 공립학교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것. 신교육의 측면에서는 1904년 세워진 쟝수사범학교의 후신이다.

그래서 ‘부학천년 신학백년(府學千年 新學百年)’, 즉 공립학교로는 천 년의 역사, 신식교육으로는 백 년의 역사다. 갑골문 해석을 비롯한 중국 고고학의 창시자 및 농학의 개척자인 뤄전위(羅振玉)가 신식학교의 초대 교장을 맡았고 역시 갑골문 연구를 비롯해 여러 방면에서 석학이었던 왕궈웨이(王<56FD>維), 저명한 역사학자 첸무(錢穆) 등 걸출한 스승들이 교편을 잡았다. 이런 역사와 전통 속에서 재계·문화계·과학기술계에 숱한 인물들이 배출됐고 지금도 내 중국어 선생인 주저원을 비롯한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고 있다.

4 당대의 스승이란 뜻의 ‘일세지사(一世之師)’라고 쓴 헌액 아래 놓인 범중엄 좌상.

장펑 선생은 보통화(普通話·표준어)를 잘 쓰기 때문에 의외로 대화가 잘 됐다. 낯선 인물명이나 지명은 필담을 해서 지장이 없는데 샹이 통역을 자처했다. 내가 하는 보통화를 쑤저우화로 바꿔 장 선생한테 전달하고 장 선생이 보통화로 대답을 하면 샹신원 식 보통화로 바꿔서 전달하는데 샹이 하는 말을 더 알아듣기 힘들다. 그래도 일인다역을 마다하지 않는 샹이 고맙다.

장 선생은 “입시 위주의 주입교육을 배제하고 학생들의 잠재능력을 배양하고 있다”고 학풍을 소개하면서 “예컨대 동아리만 67개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당장 좋은 대학엔 가지 못하더라도 점점 더 잠재력을 실현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표정에서는 자부심과 동시에 겸손이 읽힌다.

교정 곳곳에는 역사가 묻어 있다. 음악교실은 언덕 위에 있었는데 중국의 전통 강당이었다. 내려오면 천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을 것 같은 연못가에 수양버들이 심어져 있고 넓은 운동장의 그늘에서 아이들이 춤을 배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학생 수는 1800여 명인데 교사는 260명이어서 교사 대 학생 비율이 1대 7이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쑤저우 고교와 인접한 곳이 공자의 사당인 문묘. 중국의 큰 도시에 가면 문묘는 하나씩 다 있다. 공자 동상이 세워져 있고 문묘 안에 있는 별도의 사당에는 당대의 스승이라는 뜻의 ‘일세지사(一世之師)’ 헌액과 함께 범중엄의 좌상도 자리하고 있다. 쑤저우에 다른 명소가 많아선지 문묘에는 발길이 뜸하다. 한가로이 범중엄이 지은 ‘악양루기’를 읽었다.

호남성에 있는 악양루를 보수한 친구의 청으로 지은 ‘악양루기’에서 자주 인용되는 구절은 ‘선천하지우이우 후천하지락이락(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세상에 앞서서 근심하고 세상이 다 누린 뒤에 누린다)’이다. 사대부의 자세를 말하고 있다. 그보다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은 ‘불이물희 불이기비(不以物喜 不以己悲: 모함으로 뜻을 못 이루고 낙향했지만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다)’이다. 의연함이 느껴지는 구절인데 바깥의 일로 기뻐하지 말며 스스로의 일로 슬퍼하지 말라는 뜻. 자전거 여행의 문맥에 맞춰 해석하면 길이 내리막이거나 순풍이 분다고 즐거워하지 말고 반대로 길을 못 찾고 헤매는 스스로에 대해서도 ‘자책하기 없기’로 읽힌다. 자전거 여행뿐이 아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기의 길(道)을 가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사당 앞에는 옛 과거 고사장이 있다. 고시생당 한 평쯤 되는 공간을 지금은 흰 페인트로 구획해 놓았다. 내게는 마치 감옥의 창살을 연상케 했다. 과거를 보기 위해 경전의 ‘노예’가 돼 달달 외우는 데 일생을 바쳐야 했던…. 605년 수양제가 도입한 과거는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동시(童試) 또는 원시(院試)라고 부르는 1차 시험 다음에 향시(鄕試)-회시(會試)를 거쳐 황제 앞에서 보는 전시(殿試)까지 네 단계를 거쳤다. 동시에 합격하면 생원(生員), 향시는 거인(擧人), 회시는 공사(貢士), 마지막으로 전시에서 합격하면 진사(進士)가 된다.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최진사댁 셋째 딸’이라는 노래에서 보듯 진사를 쉽게 생각하는데 중국에서 ‘진사 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조선시대에 생원과와 진사과는 대과라는 최종 시험을 치르기 위한 소과였다. 만약 명나라에 가서 조선에서 온 진사라는 명함을 내밀고 ‘같은 진사끼리’ 이런 말을 했다가는 뺨을 얻어맞았을 것이다.

쑤저우시는 과거가 시행된 1300년 동안 10만 명의 진사 중 3000명을 배출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중에서 전시를 일등으로 합격한 장원만 해도 신원 확인이 가능한 600명 중 쑤저우 출신이 60명이라는 것. 그래서 문묘에선 과거제도는 종이·나침반·활판인쇄술·화약에 이어 중국의 5대 발명품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개념과 함께 과거제도에 관한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1905년 과거제도를 폐지한 뒤 일본을 본받아 시행한 계묘학제(癸卯學制)의 수학기간이다. 소학 9년, 중학 5년, 고등교육 11∼12년, 도합 25년 이상이다. 이대로 지금도 시행하고 있다면 서른이 넘어야 겨우 취직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래도 과거를 준비하는 기간보다는 짧았을 것이다. 동시(원시)는 3년에 두 번, 향시는 3년에 한 번씩 있었다. 만약 향시에서 한 번 떨어지면 3년을 다시 외워야 한다. 시험에만 합격하면 한국의 예전 사법고시처럼 팔자를 고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중국의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루쉰의 『공을기(孔乙己)』는 바로 이런 ‘과거 폐인’을 비판한 단편소설이다. 『공을기』는 과거를 보다 보다 계속 실패하고 좀도둑질이나 하고 다니면서도 체면은 중시하는 폐인. 술집에 와서 술집 종업원인 작중 화자에게 ‘한자를 쓸 줄 아느냐’고 묻는다. 작중 화자는 ‘그걸 알아서 무슨 소용 있느냐’고 하는데 루쉰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식을 외우고 쓰도록 한 과거제도가 중국을 낙후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위진남북조 시대를 거쳐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는 귀족들과 권력을 나눠 갖기 싫어서 과거제도를 개시했다. 덕분에 평민도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중국에서 귀족 명문가가 사라지는 계기가 된다. 문제는 출제 범위였다. 대학·논어·중용·맹자의 사서와 시경·서경·예기·춘추·역경의 오경이었다. 주희가 사서를 해설한 ‘사서집주’를 펴낸 이후에는 사서가 『수학의 정석』이나 『성문종합영어』 같은 텍스트가 됐다. 1300년 동안 같은 문제집을 풀고 있으니 발전할 리가 없다. 온고(溫故)만 있었고 지신(知新)은 없었다. 명·청 시대 팔고문(八股文)으로 시험을 볼 때는 경전보다는 문장의 형식을 짜맞추는 시합으로 변질됐다.

최근 샹원이 합격한 공무원 시험과목과 비교해보자. 1차는 행정능력시험으로 법률상식과 어문(중문)·수학·추리·정치 등 5과목과 예문을 주고 글을 쓰도록 하는 논술을 치른다. 필기를 통과하면 면접을 치르는데 문제를 주고 이에 대한 의견과 관점을 구술한다. 문제해결 능력을 중시하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새로운 임용고시는 악양루기에 나오는 ‘세상에 앞서 고민하고 가장 늦게 누리는’ 그런 공무원을 가리는 제도는 아니다. 시험으로 도덕성을 매기는 것에 무리가 있지만 과거는 전문가보다는 문사철(文史哲)에 정통한 인덕 있는 인재를 뽑으려는 데 목적이 있었고 범중엄을 비롯해 청사에 빛나는 사대부가 나왔다.

반면에 서양의 제도는 믿지 못한다는 걸 전제로 한다. 서로 감시하게 만들었다. 그 체제의 작동 정도는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행정·입법·사법 3부에다 언론의 독립이 그것이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체제다. 당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관리들은 세상에 앞서 누린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과거를 부활시킬 수도 없고, ‘중국만의 길’을 따라 중국은 앞으로도 많은 고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홍은택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에서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는 등 14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NHN 부사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가 있다.

6월 23일까지 중국 자전거 여행을 하는 필자의 소식은 매일 미투데이(http://me2day.net/zixingche)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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