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종점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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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정진홍
논설위원

# 피니스테레(Finisterre)! 말뜻 그대로 ‘세상의 끝, 땅의 끝’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떠나 사흘을 꼬박 걸어 피니스테레에 도착한 때는 오후 11시가 다 돼서였다. 그 밤에 문을 연 바닷가 레스토랑을 찾아 우선 극도로 허기진 배를 수프와 샐러드로 진정시키고 이 고장 특산인 문어 요리를 주문해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조촐하지만 의미 있게 홀로 자축하는 시간을 가졌다. 프랑스의 생장피에드포르를 출발해 이베리아 반도를 동에서 서로 가로질러 피니스테레까지 장장 900여 ㎞를 46일에 걸쳐 좀 느리지만 끝까지 걸어낸 것을 스스로 축하한 것이다. 그날도 오전 7시부터 비를 맞으며 걸었으니 오죽했으랴. 하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만큼 내겐 특별한 밤이었다. 아니 그 상황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리라.

 # 그렇게 밤을 지새운 후 동틀 무렵, 피니스테레에서도 가장 서쪽 끝인 등대까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밤을 꼬박 새웠건만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 등대로 올라가는 길에 해돋이가 시작됐다. 서쪽 끝이라 일몰만 장관인 줄 알았는데 바다를 낀 산에서 뜨는 해도 기가 막혔다. 그 해돋이에 넋이 나가 걷다가 서기를 몇 번이나 했다. 그렇게 오른 등대 주위에는 난데없이 산양들이 떼지어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마리가 깎아지른 절벽 아래에 홀로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거기서 바다를 향해 울고 있었다. 그 산양도 더 나갈 길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일까?

 # 그 절벽 아래 파도가 부서져 포말을 일으키는 곳을 바라보다가 문득 영화 ‘빠삐용’이 생각났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드레퓌스 벤치’가 놓인 자리 같았다. 드레퓌스 벤치는 수형자들의 무덤이라 불리던 섬 디아블의 제일 꼭대기에 위치한 벤치였다. 무고한 드레퓌스가 사형선고를 받은 뒤임에도 홀로 앉아 새로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다졌다는 바로 그 벤치다. 본명이 앙리 샤리에르인 빠삐용도 살인죄의 누명을 쓰고 디아블에서 수형생활을 할 때 늘 그 드레퓌스 벤치에 앉아 최후의 탈출을 꿈꿨다. 그는 비록 자신이 누군가를 죽인 살인죄는 짓지 않았지만 ‘인생을 낭비한 죄’ ‘젊음을 방탕하게 흘려보낸 죄’로부터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후 그는 ‘보복과 복수를 위한 탈출’이 아니라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탈출’을 감행해 마침내 코코넛 자루 두 개를 묶어 만든 뗏목을 벼랑에서 먼저 던진 후 자신도 뛰어내려 자유를 되찾았다. 그 후 36년 만에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을 다시 찾은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뇌었다. “너는 이겼다, 친구여…. 너는 자유롭고 사랑받는 네 미래의 주인으로 여기에 있다.”

 # 500여 년 전 그 누군가도 산양이 서서 울던 바로 그 자리에서 그 두려운 바다를 응시했으리라. 그때까지 모든 이는 거기가 종점이고 더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누군가는 거기가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생각했다. 콜럼버스도 그중 한 사람이리라. 물론 콜럼버스가 피니스테레에 발을 디뎠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땅이 끝나고 두려움의 바다만 있는 곳으로 과감히 나아가지 않았던가. 남들이 더 나갈 수 없는 종점이라고 당연시할 때 그는 거기가 오히려 새로운 시작점이라고 생각하고 결행했던 것 아닌가.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지 않았던가!

 # 몸뚱이가 부서져라 걸어서 닿은 서쪽 땅 끝에서 두렵고 알 수 없는 바다, 아니 그 미지의 미래를 향해, 또 내 조국 대한민국과 팔천만 겨레를 향해 목놓아 외쳐본다. “종점은 없다! 나와 우리 앞에는 새로운 시작점만이 있을 뿐!”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길이 간직할 진정한 가치이고 무엇이 분토처럼 버릴 것인지를 분명히 해 기본을 다시 세우고 가치를 다시 펼치자.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 내가, 우리가, 대한민국이! 우리에게는 뭔가를 다시 할 자유가 있지 않은가. 뭔가를 다시 할 자유! 그것이 새로운 시작의 참뜻이리라.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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