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 출신 여성, 30조 도서관 IT시장 개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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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삼성SDS 고수영 그룹장이 명지대 방목학술정보관 서고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하 3층, 지상 4층 규모의 이 건물은 설계 초기부터 IT와 디자인을 접목한 DSC시스템을 적용해 도서관 자리 예약과 일정 확인 등 학생들의 이용 편의를 극대화했다. [사진 삼성SDS]

대학 도서관은 대학의 심장으로 여겨진다. 도서관이 보유한 장서 수는 해당 대학의 자부심이다. 그런데 최근 미술학도 출신의 한 IT업계 여성이 대한민국 도서관의 디지털화를 주도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삼성SDS 고수영(41) 그룹장이다. 그는 고려대와 연세대 등 국내 10여 개 주요 대학 도서관에 DSC(Digital Space Convergence) 시스템을 구축했다. DSC 사업이란 첨단 IT기술과 디자인을 함께 입혀 효율적이고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2015년에는 세계시장 규모가 30조원(업계 추산)에 달할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로 최근 성장세가 꺾인 SI(시스템통합) 업계로서는 블루오션이다. 그가 국내에서만 DSC 시스템을 구축한 도서관들의 장서 수를 합하면 1000만 권에 달한다. 미국 MIT·스탠퍼드·인디애나주립대(블루밍턴) 등 주요 명문대들도 그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접촉 중이다. 서울대와 국립세종도서관과도 DSC 도입 컨설팅을 진행했다.

 고 그룹장은 지난달 영국의 주요 명문 대학 중 하나인 버밍엄대의 신축 도서관 사업도 따내며 이 분야 해외 진출의 길도 열었다.

 고 그룹장은 대학에서 미술을 배웠다. 공학 전공자 중심인 SI업계에서는 소수자다. 1997년 삼성SDS에 ‘토이스토리’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꿈을 안고 입사했지만, 입사 직후 찾아온 외환위기 때문에 금세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신세가 됐다. 타 부서의 사업 제안을 위해 3D 애니메이션 작업을 돕는 역할을 하며 주변인으로 수년간 머물렀다. 하지만 적극적인 성격은 그에게 기회를 열어줬다.

 그의 첫 작품이랄 수 있는 고려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디지털미디어센터는 ‘고려대가 멀티미디어센터를 구축할 예정’이라는 신문 단신 기사를 보고 무작정 찾아갔던 게 계기가 됐다. 그는 “멀티미디어 쪽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부딪쳐 보고자 고객을 찾아갔고, 그게 열매를 맺었다”고 소개했다.

 SI업계가 성장 정체에 빠지면서 고 그룹장처럼 ‘개성 있는’ 직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사업 기회를 내주는 것도 기회가 됐다. 고 그룹장은 “미술과 IT, 어느 한 쪽에서도 대가에 이르진 못했지만 두 가지를 섞은 분야(DSC)를 스스로 만들어 놓고 보니 거기에선 전문가가 되어 있더라”고 말했다. 입사 초기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던 탄탄한 디자인 실력 역시 무기가 됐다.

 그는 “현재는 도서관이나 일부 공공기관 같은 소수의 공간에만 DSC가 적용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문화센터나 리조트 등 더 많은 목적 공간에 이를 확산시키고 싶다”며 “앞으로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IT업체가 건설사 못지 않게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DSC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 등으로 사용 편의를 높인 ‘스마트 도서관·디지털 도서관’보다 진일보한 개념이다. DSC는 건물 설계 단계에서부터 최대한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 인터넷이 깔려 있는 PC 앞에 서지 않아도 도서관 관련 다양한 소프트웨어(도서·자리예약, 정보검색)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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