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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육체, 인간 고뇌 담아 '류인 추모전'

중앙일보

입력

얼굴과 한쪽 어깨가 잘려나간 상체에 남은 한쪽 손이 없어진 얼굴쪽을 더듬고 있다('정전Ⅰ', 1989). 근육질의 사내가 철근에 갇힌 채 비명없이 고통을 참아낸 표정을 짓고 한 손을 길게 내밀고 있다.

그에게는 얼굴 앞쪽과 가슴 일부, 두 손밖에 없다('그와의 약속', 89). 99년 43세의 나이에 간암으로 요절한 류인의 작품들은 시각적 충격을 던진다.

사실적인 근육과 골격의 표현은 로댕을 연상시키지만 뒤틀리고 해체되고 일부가 절단, 생략된 모습은 로댕과는 다른 섬뜩한 표현력을 지닌다. 이른바 표현적 리얼리즘이다.

31일~2월 25일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2주기 추모전 '그와의 약속'은 류인의 강렬한 힘과 상징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기회다. 94년작 '싹트는 달 - 황토현 서곡'같은 대형 조각에서 설치미술 '황색음 - 묻혔던 숲' 등의 유작 15점이 나온다.

그가 표현하고 있는 인체는 온전하지 않은 불구의 형상이다. 류인은 파편화된 인체에 강렬한 상징성을 담아 제시한다.

"조각은 일단 보여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 보는 이와 함께 숨쉴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장식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조각은 우리의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만 많고 던져짐이 약해서는 이미 조각적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생전의 말대로다.

류인은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 심리적 갈등과 의식의 파편화 현상을 집요하게 파헤친 작품으로 '현대 조각의 작은 거인'으로 불렸다.

'입산' 연작은 얼굴과 팔만 남은 사내가 산을 오르는 형상이다.
어깨와 얼굴은 커다란 돌 입방체로 둘러싸여 있지만 강인한 팔이 한걸음씩 전진해 나간다. 그 팔걸음은 힘겹고 끈질기지만 가는 곳은 구원의 땅이 아니라 그저 세속의 욕망을 벗어난 산일 뿐이다.

'밤-혼' 같은 작품에는 기둥 위에 뒤집힌 채 걸쳐 있는 인간이 나온다. 팔다리는 잠든 듯 축 늘어져 있지만 두 손만은 무언가를 찾고 갈구하고 있다. 작가가 겪었을 법한 고뇌의 밤이다.

'정전'의 울퉁불퉁한 손마디와 뭉툭하고 납작해진 손가락끝은 작업에 혹사당한 작가 자신의 손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 손은 쉬지 않고 쓰러질 때까지 작업에 매달리다 결국은 병원에 실려가던 열정의 결과다. "어느 순간 표현의 힘을 느꼈을 때 나의 손은 쉬지 못한다."

평론가 최열은 "그가 표현하는 기괴한 형상은 우리 자신의 초상이다.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본성을 갖고있는 동시에 무기력하고 나약한 존재지만 사고와 성찰을 통해 자신을 갱신할 수 있는 우리들인 것"이라고 말한다. 02-736-1020.

▶ 류인은…

1956~99. 서양화가 류경채(1920~95)씨를 부친으로, 조각가 류훈(1954~)씨를 형으로 한 미술가 집안 출신. 홍익대 조소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한국미술대전 특선·우수상, 문화체육부 올해의 젊은 예술가상, 한국일보 청년작가 초대전 우수상, 한국미술평론가 협회 우수창작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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