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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농부가 밭에서 배달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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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곳 강남, 이곳에 농부가 있다. 이 도시 농부는 자신이 기른 농작물을 먹을 사람의 건강을 생각해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농법을 고집한다. 그는 이토록 정성껏 재배한 농작물을 강남구민에게 보낸다. 강남에서 ‘로컬푸드’를 시작하는 정영호(56·율현동)씨의 이야기다.

율현동 비닐하우스에서 작업 중인 정영호(왼쪽)씨와 그의 동서 정후섭씨. 이들은 ‘강남구 로컬푸드’를 통해 친환경농법으로 키운 채소를 강남구민에게 배달할 예정이다.

지난 24일 오전 강남구 율현동에 있는 비닐하우스. 정씨가 동서 정후섭(54·세곡동)씨와 함께 상추를 따느라 분주하다. 농사꾼으로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정씨의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렸다. 전국 농산물이 모이는 가락시장과 가까운 곳을 찾다 지금의 농장이 있는 율현동에 터를 잡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올해로 24년이 됐다. “종종 ‘강남에서 농사할 땅이 어디 있냐’고 묻는데 지금 농장이 있는 지역은 개발제한구역인 데다 소비층이 두터운 강남에 자리하고 있고 가락시장이 가까워 물류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게 정영호씨의 설명이다. 특히 그가 1998년 본격적으로 시작한 친환경 농법은 가족의 건강을 생각해 몸에 좋은 농작물을 찾는 트렌드와 맞아떨어졌다. “이왕 농사 짓는 거 소비자는 건강한 먹거리를 구할 수 있어 좋고, 길러서 내놓는 저는 경쟁력이 있으니 서로에게 좋죠.” 친환경 농법으로 기른 농작물은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의 상태여서 신선도가 오래 유지되는 장점도 있다.

농사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그지만 그동안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친환경 농법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다 보니 벌레가 생기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칙넝쿨액이나 식초 등을 잎사귀에 발라 벌레를 예방하는 게 다죠. 벌레가 많아지는 여름철은 특히 걱정이 많아요. 한 번 벌레가 생긴 농작물은 다 버려야 하거든요.” 그때마다 힘이 돼 준 건 함께 농사를 짓는 가족이었다. 2003년 따로 농사를 짓던 동서 정후섭씨와 함께 ‘이푸른 농원 영농조합’을 설립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지금은 함께 하는 직원의 수가 25명이 넘고 대형마트에 직영 판매장을 운영할 만큼 성장했다. “땅은 거짓말을 안 하죠. 한 만큼 돌려줘요. 그래서 잘 자라는지 항상 지켜봐야 하는데 가족이 함께 하다 보니 서로 기댈 수 있으니 큰 힘이 됩니다.”

처음 농사일을 했을 때 정씨의 비닐하우스 안은 상추와 시금치뿐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쌈을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쌈채소, 그 중에서도 상추를 기르기 시작했죠.” 농사일이 손에 익으면서 하나 둘 농작물을 늘렸고 지금은 브로콜리·호박·고추·토마토·케일·콩나물·새싹류 같은 30여 가지의 채소를 재배한다. 농작물은 대부분 물을 이용한 수경재배 방법으로 기른다. 환경 오염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종류의 작물은 같은 토지에서 재배해 생육이 불량해지고 수량이 감퇴하는 연작 장애도 피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강남구 로컬푸드 ‘쌈채가득’

강남구민 식탁에 올릴 로컬푸드 재배

정씨는 최근 ‘로컬푸드’에 뛰어들었다. 로컬푸드는 ‘내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내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운동이다. 소비자에게는 안전하고 저렴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생산자에게는 새로운 판로 개척에 따라 소득 증가에 기여할 수 있어 주목 받고 있다. 지난 달 강남구는 구민과 관내 농가를 위해 로컬푸드 사업을 기획하고 참가 신청을 받았다. 이 중 친환경농산물이라는 장점과 직배송이 가능한 유통체계를 내세운 정씨의 이푸른 농원 영농조합이 선정됐다. 요즘은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준비에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정씨가 생산한 친환경농산물은 6월 1일부터 ‘쌈채가득’이라는 이름으로 강남구민에게 배달될 예정이다. 중간 마진이 없어진 만큼 가격도 저렴하다. 시중가의 70~80% 정도다.

회원 모집은 강남구가 맡았다. “농사 짓는 사람이 직접 고객을 잡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강남구에서 회원 모집을 맡아주니 고맙죠.” 정씨는 대신 농산물 품질과 배송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정씨는 “전날 수확한 농산물을 다음날 바로 배달하는 만큼 집에서 편하게 신선한 친환경 농산물을 드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농사 경력이 10년 이상 된 직원들이 직접 구민의 집까지 배달하는 만큼 상품상태를 현장에서 체크할 수 있다. 품질에 문제가 있는 상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리콜할 계획이다. 정씨는 “다른 친환경 채소들과 비교해봐도 품질이나 가격 모두 만족할 수 있어요. 강남구의 로컬푸드 사업을 통해 구민이 친환경 농산물의 장점을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9가지 무농약 채소 회원제 배달

강남구 로컬푸드 ‘쌈채가득’은 상추와 쌈채류 계절상품을 담아 집까지 배달해준다. 적상추·청상추·치커리·겨자채·쌈추·케일·쑥갓·적근대·신선초·비트·맛고추·브로콜리·콩나물·새싹류·아욱·토마토·감자 등 다양한 채소 중에서 9종류를 담는다. 같은 채소가 계속 배달될 경우 질릴 수 있는 만큼 상추를 제외한 다른 쌈채소와 계절상품의 구성을 다르게 한다. 모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인증한 무농약농산물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가격은 한 달에 2번(둘째·넷째주) 받을 경우 3만원, 4번(매주) 받으면 6만원이다. 강남구 지역경제과 소비자보호팀 홍명숙 팀장은 “구가 야심차게 준비한 로컬푸드 사업을 통해 강남구에서 생산된 친환경 채소를 구민에게 공급할 수 있게 됐다”며 “채소를 많이 먹음으로써 구민의 건강 증진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친환경농산물을 시중가의 70~80%에 공급해 지역 물가 안정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청을 원하는 구민은 각 동주민센터와 강남구청 지역경제과로 연락하면 된다. 매달 30일까지 입금 확인 된 회원에 한해 다음 달부터 상품을 배송한다. 신청한 요일에 상품을 받을 수 없을 경우 1주일 전에 연락해야 한다. 배송비는 없으며, 동에 따라 정해진 배달 요일이 다르다.

문의 02-2104-1177(강남구청 지역경제과)

글=송정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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