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흘러내리는 쪽으로 누워 … 프로대회 땐 짧게 깎아 별 영향 없어

골프 중계방송을 보면서 TV 볼륨을 줄여놓거나 무음 상태로 해 놓는 시청자들이 있다. 각자 취향이 다르기도 하지만 아나운서와 해설위원의 목소리, 언어 구사의 특징에 대한 호불호(好不好) 때문으로 풀이된다. 멘트의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올바른 정보 전달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다.

박원의 비하인드 골프 <16>그린 잔디결에 대한 오해와 진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는 내용 가운데 하나가 잔디결(Grain)에 관한 것이다. 제임스 비어드의 책 골프코스 잔디관리에 따르면 잔디결이란 잔디의 잎, 새싹, 줄기가 특정 방향으로 누워 자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그린에서 공이 구르다가 어떤 지점에서 잔디가 누워 있는 방향으로 틀어지게 된다.

그린에 사용되는 잔디의 종류는 많다. 그중에서도 벤트그래스의 개량종으로 생육이 빨라 골프코스 그린에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크리핑 벤트그래스, 더운 지방의 버뮤다그래스, 미국 서부지역의 포우 애뉴아가 잔디결의 영향이 큰 대표적 종이다.

햇빛과 중력은 잔디가 자라는 패턴과 눕는 방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잔디는 해바라기처럼 태양의 위치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으나 햇빛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또 중력은 물(줄기)의 흐름과 같다고 보면 된다. 잔디는 수분을 좋아하기 때문에 높은 곳에서 낮은 쪽으로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잔디 잎이 눕는다. 그린 주변에 워터해저드가 있으면 그쪽으로 잎이 뻗어나간다.

과거에 잔디결은 그린에서 플레이 할 때 중요한 요소였다. 더운 지방에서 4.5~6.5㎜ 길이로 자란 버뮤다그래스 그린을 읽을 때 잔디결을 파악하는 건 빠뜨릴 수 없는 사항이었다. 잔디결과 반대 방향, 즉 역결로 거슬러 올라가는 퍼팅은 공이 느리게 굴러가고 순결 방향 퍼팅은 공이 빠르게 구른다. 이를 감안해 스트로크 강도와 퍼팅 라인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됐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더 빠른 그린을 선호하면서 그린 관리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특히 잔디 깎는 기계와 롤러가 도입되고 ‘수직 깎기’와 ‘잔디 쓸어주기’가 매일 반복되면서 잔디가 똑바로 곧게 자라고 잔디결 형성이 방지되는 효과가 생겼다. 그 덕분에 잔디결이 공의 롤(roll)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었다.

골프장 그린을 관리하는 그린 키퍼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프로 대회가 열리는 코스의 그린은 대단히 짧게 깎기 때문에 잔디결의 영향이 작을 수밖에 없다. 잔디 종자가 개량되면서 최근에는 2.5㎜ 이하로 짧게 깎을 수 있는 장비까지 도입됐다. 극도로 짧게 깎아도 잔디의 생장점을 다치지 않기 때문에 잔디가 죽지 않는다고 한다.

KLPGA 투어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이 열리고 있는 춘천 라데나 골프장의 코스관리팀 김득환 부장은 “대회를 앞두고 질소 등 영양이 함유된 비료 사용을 줄이면 그린 잔디는 영양이 부족해져 잎이 가늘게 자란다. 그 상태에서 짧게 깎으면 잔디결은 공이 굴러가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시간주립대의 최근 논문에 따르면 3.175㎜ 길이의 잔디에서는 공에 닿는 잎사귀 면적이 크지 않아 잔디결이 공의 구름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측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10m 이상의 롱 퍼트는 잔디결이 아니라 바람에 의해 공의 구름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나아가 잔디를 두 차례 깎는 더블 커팅과 그린을 눌러주는 롤링을 해 주면 그린은 더욱 빨라지고 표면이 부드러워져 잔디결 때문에 공의 구름이나 방향이 달라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프로 선수들은 잔디결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고 그린의 높낮이에 따른 중력에 더 큰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계방송을 하는 아나운서와 해설위원도 잔디결과 관련한 코멘트를 내놓을 때 더욱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그러나 주말 골퍼들은 주로 3.5~4.5㎜ 정도 깎은 그린을 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프로들과는 상황이 다르다. 퍼팅 라인을 파악할 때 잔디결이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