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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세상] 유용주시인의 글

중앙일보

입력

"그렇다. 삶은 그저 피동적으로 살아내기가 아니다.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자신이 주인이 되어 싸워 이기고 나아가는 것이다. 삶을 능동적으로 경작하는 농부가 되는 일이다. 삶의 주름진 고랑을 갈아엎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눈물이, 상처가, 고통이 얼마나 소중한 씨앗인지. 파종한 만큼만 수확을 바라는 정직한 사람들이, 봄을 기다리는 누님 같은 사람이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유용주(41)시인이 지난 연말 펴낸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솔출판사.7천5백원)가 새해에도 여전히 추운 마음을 녹이며 읽힙니다.

시인의 누님은 빈농의 딸로 태어나 어린 동생들 업어 키우고 시집가 갖은 고생 다하며 50이 꽉 찬 오늘 새벽에도 어김없이 식당 주방으로 출근합니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리라고 믿으며 오늘도 삶의 주름진 고랑을 깨끗하게, 열심히 씻고 갈고 있는 누님에 대한 글에서 '그래, 나도 다시 일어나보자' 는 힘을 얻습니다.

산문집 속에는 유씨 자신의 밑바닥 삶도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중국집 배달과 주방일, 제빵공장 화부, 귀금속 세공과 막노동 등 밑바닥 삶을 처절하게 살아내다 그 아픔으로 남에게 위안이 되는 언어들을 찾아 유씨는 시인이 됐습니다.

그의 세번째 시집 『크나큰 침묵』을 보고 김지하 시인은 "삶의 엄혹함.복잡함을 이미 초반에 거머쥔 사람들 특유의 넘쳐나는 활력이 사방에 빛을 뿌린다" 며 감탄했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시.소설과 글들이 출판되고 있으나 활력이 넘쳐나는 글들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1980년대 현실 참여와 개혁 내지 혁명을 앞세우는 이념이 팽배했으나 정작 구제해야 할 구체적 현실앞에서는 무력해지기 일쑤였습니다.

90년대 들어서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황폐화한 인간성에 자양분을 주려는 듯 명상과 종교.예술 취향적인 글들이 많이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글들 역시 우리들의 생생한 삶과는 많이 떨어져 있어 활력이나 힘을 느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의 중심은 각 삶의 현장이다. 진정한 중심은 대학 강단도 아니요, 출판사 편집실도, 이론가의 세미나실도, 지식인들의 연구실도 아닌 너른 땅 곳곳에 흩어져 축지고 모나고 깨지고 짜부라진 채 생활을 모시고 살아가는 이들과 그 텃밭이다. 주변의 중심화를 위해 그 배고픈 삶의 텃밭에 우리의 보습을 대고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일구고 섬기는게 우리의 몫이다."

살아온 만큼만 쓰겠다는 사람들이 모여 '글마당 사람들' 이란 모임을 만들고 유씨 또한 그렇게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글은 그것이 곧 글쓴이의 진솔한 삶이 될 때 힘을 얻고 남에게 감동과 용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많은 글들은 겪어서 느끼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보고 들어 안 것들에 의해 쓰여지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언론들이 너나 없이 기초를 다지고 근본을 세우자 나서고 있습니다. 글도 그 기초요 근본인 삶의 텃밭으로 돌아간다면 더 튼실한 수확을 거둘 것이라는 것을 유씨의 글들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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