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 연두회견 문답]

중앙일보

입력

◇ DJP 공조 복원과 '강력한 정부론'

- 지난번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와 만나 임기 말까지 공조키로 했는데 차기 대선까지 공조로 이어지는가. 연말에 언급한 '강력한 정부' 의 의미는.

"자민련과 공조를 복원하는 데 다음 대선 문제에 대해선 논의한 바 없다. 지금은 총력을 다해 경제를 회복시키고, 정치와 사회를 안정시킬 때다. 강력한 정부란 옛날 군사정부처럼 물리적 힘을 휘두르는 정부가 아니다. 정반대로 민주적 절차를 준수하며 대화와 양보로 풀어나가는 정치가 강력한 정치다. 민주 원칙과 법 질서가 보장돼야 한다. 정부는 민주적이고 강력한 정부로 원칙과 법을 준수하는 국민 여론을 최고로 두려워하는 의미로서의 강력한 정부를 구성해 나가겠다."

◇ 여야 극한 대립과 의원 이적(移籍)

- 경색정국을 풀기 위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를 다시 만날 용의는 없나.

"야당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생각은 과거와 지금, 앞으로도 변함없다. 대통령을 편하게 성공적으로 하려면 야당의 협력을 받아야 한다. 내 부덕(不德)
의 소치겠지만 불행히도 지난 3년간 야당 협력을 못받은 것은 물론 심한 괴로움을 당했다. 총리(정권 출범 때 JP의 경우)
를 6개월 동안 인준해주지 않고, 실업대책이 포함된 예산을 몇개월째 통과시키지 않고, 툭하면 국회를 버리고 밖으로 나가는 등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야당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잘 지내고 싶다. 그러나 원칙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적.법치주의적 원칙이 있어야 한다. 상대방 입장을 존중하는 상생(相生)
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나는 대통령이 되기 전 야당 때 이런 원칙을 지켰다. 심지어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소야대(6공 초기)
때도 안건의 97%를 사전 협의를 거쳐 만장일치로 처리했었다.

정치안정.민생.남북문제는 언제나 여당과 협력해 적극 도왔다.

앞으로 야당과의 관계에 있어 범국민적 차원에서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정책은 경쟁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고, 대통령은 선거를 공정히 관리하는 상황이 실현되길 바란다."

- 민주당 의원들의 자민련 이적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많다.

"국민의 비판은 겸허히 듣겠지만 야당의 비판은 온당치 않다. 야당은 총선 민의(民意)
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는데 총선 민의는 여당과 야당에 모두 과반수를 주지 않고 자민련에 17석을 준 것이다. 캐스팅 보트를 가진 자민련이 국회 운영에서 발언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 많은 나라가 소수 권리보장이라는 의미로 10석 정도면 교섭단체를 주고 있다. 우리당과 자민련이 교섭단체 정족수를 낮추는 법안을 냈는데 야당이 표결을 저지하고 폭력으로 막아 몇달째 통과되지 않고 있다. 또 야당은 과거 여당 때 그런 일이 없었나. 우리는 공조로 의원을 주고받았지만 과거 여당은 야당을 파괴하면서 데려갔다.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은 과반수에 11석 모자랐다.

자민련에서 6석, 통합 민주당에서 3석, 무소속에서 13석, 모두 22석을 빼내가 반수에서 11명이 넘었다. 또 자민련 소속 도지사 2명과 무소속 도지사.시장 1명씩 모두 4명을 데려갔다.

자신들이 야당을 파괴하면서 데려가는 것은 괜찮고, 공조 여당끼리 교섭단체를 만들어 주는 것은 국정 파괴라는 주장에 국민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의원 이적은)
바라서 한 일이 아니고, 불가피하게 한 것이다. 야당이 장외집회까지 하면서 규탄하는 게 이해가 안된다."

◇ 정계개편론과 개각

- 개각 구상은.

"궁금하겠지만 기다려달라. 지금은 경제문제를 숨가쁜 심정으로 되살리려 하고 있다."

- 정계개편.개헌설에 대한 입장은.

"그런 말 들을 때마다 마치 자라를 보고 놀란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들어본 일도, 주위에서 논의한 일도 없다.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

◇ 1996년 총선 때 안기부의 신한국당(한나라당 전신)
자금 지원에 대한 수사

- 검찰의 안기부 자금 수사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까지 미칠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

"그 문제는 전적으로 검찰이 법률에 의해 수사하고 있다. 비록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사견(私見)
이라 하더라도 그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지금은 의견을 삼가도록 하겠다."

◇ 'DJ 비자금'

- 야당은 수사에 반발하면서 金대통령의 비자금 내역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의 비자금에 관해 소상히 밝혀달라.

"첫째, 지금의 검찰 수사는 국가 예산, 그것도 국가안보 예산을 말하는 것이다. 범죄행위 수사지 정치자금 수사가 아니다. 초점을 다른 데로 가져가선 안된다. 둘째, 내 문제는 과거 정권 5년간 한번도 빼놓지 않고 정치자금 불법사항을 벗겨낸다고 뒤적거렸다. 심지어는 대선 기간 중에도 그랬다. 나에 대해 얼마나 많이 증거가 있다고 떠들었나. 그러나 아무도 조사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대선 때)
국회 국정감사도 하자고 했지만, 그 동의안을 당시 여당(현 한나라당)
이 부결시켰다. 요새 그런 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지만 일고의 가치를 두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내 정치생명을 걸고 불법적이거나 문제가 된 정치자금을 받은 적은 결단코 없다. 그랬다면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 경제난 극복 대책

- 구조조정과 경기 부양은 상충된 측면이 강한데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구조조정이 기본이고 경기대책은 보완적인 것이다. 의사가 중환자를 살리는데 수술을 감당하기 위해 진통제나 영양제를 주는 것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경기대책은 구조조정을 성공시키기 위한 보완조치다. 금융은 상당부분 개혁되고 있다. 금융기관이 투명화했다. 부실 채권과 시장경제 원리에 안맞는 경영행태가 없어졌고 앞으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

- 주가 흐름이 민심을 좌우한다는데 증시 활성화 방안은.

"활성화에 왕도(王道)
는 없고 정도(正道)
만 있다. 증시를 활성화하려면 기업이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특히 시장 심리가 크게 좌우한다. 우리 경제가 좋아진다는 확신을 갖고 나가야 한다. 거시경제 지표는 상당히 좋은 상태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시카고 대학의 한 교수는 경제는 심리이고 '하면 된다' 는 생각을 가질 때 잘된다고 했다. 4대 개혁을 속도감있게 진행시켜 증시를 살려내겠다."

- 소비 및 투자 심리가 얼어붙었는데 올 하반기부터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는 근거는.

"기업 대표들이 여러가지 충고는 하고 있으나 비관하지는 않고 있다. 그들은 '4대 개혁만 철저히 해달라. 그러면 우리가 해내겠다' 고 한다. 기업들이 정부에 대해 신뢰를 갖기 시작했다. 우리는 최선두 정보국가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정보화가 앞선 나라가 앞서간다."

- 추가 은행 합병 진행상황은. 산업은행의 회사채 매입 지원이 특정 기업에 편중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금융 구조조정은 순조롭게 됐다. 이제 경쟁력 없는 은행은 살아남지 못한다. 산업은행의 경우 살아남을 기업만 골라 자구노력을 보면서 지원하고 있다."

- 지방경제 활성화 방안은.

"전국 4백군데에서 주택 개량 사업을 추진해 중소 건설업체들이 일감을 얻도록 할 것이다. 전통 재래시장에 대해서도 1백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 남북, 한.미관계

- 남북관계에서 우리가 북에 끌려다녔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가 끌려간 것도 없고 끌려온 것도 없다. 우리가 더 많이 얻었다. 북한은 50년 동안 주한미군 철수.중앙연방제 실현.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미군 주둔을 통일 후에도 인정하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우리의 남북연합제를 받아들였다. 보안법도 우리에게 맡겨달라고 했더니 받아들였다. 성과가 많았다.

휴전선에서 상호비방이 사라졌다. 이산가족 상봉과 경제분야 4개 협정이 이뤄졌다. 개성공단에는 이미 5백명이 (입주를)
신청했다고 들었다. 북쪽 말 들어준 것은 만나는 장소와 날짜 등에 관한 것이다. 국민 동의 없이는 절대로 대북 지원을 하지 않는다. 국회에서 5천억원을 승인해줬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돼야 우리 부담이 줄어든다. 김정일(金正日)
위원장의 서울 답방(答訪)
은 예정대로 될 것이다."

- 한국에 다음 정부가 들어서고 북한에 다른 지도자가 들어서도 남북 화해.협력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나.

"북한 지도자 문제는 내가 언급할 게 아니다. 개인적 이익과 업적을 남기기 위한 야망으로 일하지 않겠다. 국민의 동의를 얻어 해나갈 것이기 때문에 다음 정권도 존중할 것이다."

- 대북 전력 지원이 金위원장의 답방 조건이 될 수 있는가.

"金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평양 방문에 대한 답방으로 아무런 조건이 없다. 전력 지원은 여러가지 기술적 문제가 있다. 아직 합의된 게 없다."

- 미국 부시 행정부는 대북 강경정책을 선호하고 국가미사일방위(NMD)
시스템도 지지하고 있는데.

"무역에서 양국간 문제는 없다. 부시 행정부도 기본적으로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한국이 이니셔티브(주도권)
를 쥐고 나아갈 것을 인정하고 있다. 긴밀히 대화해 공동대응해 나갈 것이다. 머지않아 부시 당선자와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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