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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불은 언제 일어날까 노인은 잠에서 깰테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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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노순택은 5월 광주를 주제로 한 사진들에 ‘망각기계’라는 제목을 붙였다. 2007년 운주사에서 찍어 각각 가로·세로 108㎝로 인화한 두 사진이 전시장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사진가 노순택]

전남 화순 천불산 운주사. 광주에서 20㎞ 떨어진 곳에 있다. 천불산 일대엔 수많은 돌부처와 탑이 흩어져 있는데 온전한 게 드물다. 사진가 노순택(41)은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유가족들이 운주사에 들러 마음을 달래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여기 아무렇게나 놓인, 얼굴이 문드러지거나 목이 잘린 돌부처들을 보면서 금남로에서 죽어간 가족과 친구들을 떠올렸을 터다.

 운주사는 미륵불을 모신 절. 미륵불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등장하는 미래불이다. 특히 거꾸로 누워 있는 와불(臥佛)이 제대로 일어서는 날, 세상이 뒤집어질 거라는 얘기가 전해져 온다. 유족들은 이 미륵불이 일어나 세상을 뒤집어주길 바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륵이 언제 일어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그 옆 토끼풀밭에 모로 누워 자는 할아버지는 언제고, 잠에서 깨어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와불이 일어나는 걸 기다릴 여유는 없어도, 저 할아버지가 잠에서 깨어 일어나는 걸 기대할 수는 있어요. 죽은 자를 기억하는 건 산 자에요. 산 자의 가장 큰 의무는 살아야 하는 겁니다.”

 분단을 주제로 사진을 찍는 노순택은 올해 동강사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5월 광주를 주제로 한 그의 개인전 ‘망각기계’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6월 10일까지 열린다. 02-739-4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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