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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 8조3천억원 어디로 갔나]

중앙일보

입력

한빛.서울.평화은행 등 6개 은행에 쏟아부은 공적자금 8조3천억원이 감자(減資)조치로 사실상 휴지가 되면서 책임론이 거세게 일었다.

대통령이 직접 문책을 지시하기에 이르렀지만 부실기업주와 금융기관.감독당국이 뒤얽혀 막대한 공적자금을 집어삼킨 이같은 결과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 8조3천억원 어디로=은행들은 부실기업의 수명을 연장해 주거나 장차 떼일 경우에 대비해 충당금을 쌓는 데 대부분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었다.

은행들이 부실기업에 돈을 계속 빌려준 배경에는 우선 부실기업을 부도낼 경우 당장 부실은행으로 전락해 구조조정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깔려 있었다.

여기에 한빛은행 관악지점 사건에서 보듯 정치권의 청탁이나 자금시장 안정 등을 내세운 감독당국의 창구지도도 한몫했다.

은행들은 9월 말 현재 대우 계열기업들에만 4조2천억원의 신규 자금을 지원한 것을 포함해 은행권에서 ▶동아건설 1천5백억원▶우방 3천4백억원▶고합에 4천9백억원 등의 자금을 내줬다.

한빛은행에 들어갔던 3조2천억원의 공적자금도 대부분 이들 부실기업에 발목이 잡혀 사라졌다. 이 은행은 올해에만 4조4천5백억원(9월 말 현재)을 떼일 경우에 대비하는 충당금으로 쌓았다.

대우 12개 계열사에 1조7천5백억원을 비롯해 ▶고합 3천5백억원▶갑을 1천2백억원▶동아건설에 6백80억원 등이다.

한빛은행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 영업이익을 2조4천억원이나 냈지만 부실기업 대출로 인한 충당금을 쌓느라 몇조원을 쓰고 보니 결국 적자를 낼 수밖에 없었다" 고 털어놓았다.

4조8천억원의 공적자금을 받은 서울은행 역시 마찬가지다. 대우계열에 4천2백억원을 비롯해 ▶동아건설 2천9백99억원▶우방 1천5백65억원 등 올해에만 1조1백89억원(9월 말 현재)의 충당금을 쌓느라 허리가 휘었다.

◇ 부실 책임은 제대로 따져 물었나=우선 제대로 심사를 하지 않고 부실 기업에 돈을 대준 은행 경영진에는 강도높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앞서 은행 부실의 주범인 부실.부도덕 기업주의 책임을 철저히 캐물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금까지 감독당국이나 예금보험공사에서 부실기업주를 문책한 사례가 단 한건도 없었다는 사실에서 보듯 부실기업주는 사실상 면책대상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부실.부도덕 기업주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기 때문" 이라며 "채권자인 은행이 적극적으로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아직 은행들이 그런 업무에 익숙해 있지 않다" 고 말했다.

정부는 뒤늦게 지난달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을 제정, 예금보험공사에 부실기업 조사권을 주고 부실기업주도 손해배상 청구대상에 포함시키는 예금자보호법을 임시국회에 제출해놓고 있다.

지난 10월 은행권은 '부실채권 회수를 위한 공동협약' 을 발족시키고 금융기관들이 공동으로 부실 기업주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제재방법도 공동으로 논의함으로써 부실채권을 적극적으로 회수하려는 첫걸음을 떼긴 했으나 성과는 두고봐야 안다.

◇ 은행 회계에도 문제=은행과 감독당국이 이번 감자 은행들의 경영 실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점도 책임논란을 빚고 있다.

11월 중순 금감원과 증권거래소에 접수된 3분기 보고서에서 9월 말 현재 한빛은행은 2조2천4백억원의 자기자본(순수한 자기돈)을 갖고 있어 납입자본금 4조3천7백억원에 비하면 2조원 가량 자본잠식이 됐지만 완전감자를 해야 할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금감위의 실사 결과 한빛은행은 부채가 자산을 초과해 실제 자기자본은 단 한푼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은 11.3 기업퇴출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의 충당금을 일시에 쌓았기 때문이란 설명이지만 두달반만에 2조원 이상의 돈이 사라진 것은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3분기 말 현재 4천3백75억원의 자기자본을 갖고 있는 것으로 공시한 서울은행과 경남은행(3분기 자기자본 1천3백12억원)도 모두 부채가 자산을 초과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와 관련, 동원경제연구소 신윤식 수석연구원은 "이번 완전감자 조치는 구조조정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점은 인정한다" 고 전제, "그러나 정부가 은행들의 부실내역을 좀더 투명하게 밝혔어야 국내외 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고 은행에 대한 신뢰도 높아질 수 있었을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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