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광우병에 흔들리는 박근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정확히 4년 전 광우병 폭력 세력은 나라를 무법천지로 만들었다. 도심을 점령하고 청와대로 진격하려 했다. 경찰관 옷을 벗겨 린치를 가하고 신문사 현관을 부쉈다. 광우병을 외쳤지만 사실은 그해 4월 총선 참패를 뒤집으려는 것이었다. 4년 후인 지금, 그 세력은 광우병 유령을 다시 부르고 있다. 이번에도 4월 총선 대패를 뒤엎으려는 것이다.

 반(反)이명박 세력은 가뜩이나 힘이 빠진 대통령을 몰아붙이고 있다. 수입 중단을 요구하는 대중 집회를 열기로 했다. 그들은 국민건강이라는 네 글자로 정권을 흔들 수 있다고 믿는다. 황혼(黃昏) 정권에 대한 부당한 협박이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인물이 ‘미래 권력’이다. 그의 행동에 따라 흐름이 변한다.

 사회가 흔들릴 때 지도자의 능력이 드러난다. 지도자는 진실에 대한 신념과 국민을 설득하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가 정말 위험한지, 위험하지 않다면 검역이나 수입을 중단하는 건 옳은 건지, 불안 선동 세력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지도자는 판단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국면에서 박근혜는 검역중단을 주장했다. 반대 세력에 동조한 것이다. 과연 박근혜 판단력은 안전한가.

 이번에 미국 목장에서 발견된 광우병은 미국 쇠고기 안전을 위협하는 게 아니다. 발병이 동물성 사료 때문이라면 ‘집단발병’ 위험이 있으므로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이번엔 그게 아니라 늙은 소에게 생긴 돌연변이로 판명됐다. 보통 식용(食用)은 30개월 미만인데 죽은 소는 10년7개월이나 됐다. 사람으로 치면 노인성 치매인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는 역사적·현실적으로 안전하다. 국제수역(獸疫)사무국(OIE)은 미국을 ‘광우병 위험 통제국’으로 분류한다. 2008년 파동 때도 이전에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은 2건에 불과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십억 인류 중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인간 광우병에 걸린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를 알기에 세계인은 요동하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캐나다·일본 등 거의 모든 나라가 아무런 동요 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다. 태국과 인도네시아가 이번에 수입을 중단했지만 그들은 원래 나이 많은 소도 수입하는 나라여서 사정이 다르다. 한국은 이들과 달리 30개월 미만만, 그것도 위험 부위를 빼고 수입한다.

 박근혜 위원장 등이 주장하는 검역중단은 사실상 수입 중단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이 반격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인은 비(非)과학적인 국민이 된다. 4년 만에 다시 근거 없는 불안에 벌벌 떠는 사람들이 되는 거다. 박근혜는 ‘안전하지만 그래도 반대파의 공격을 피하려면 검역을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12월 대선을 의식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는 유권자를 믿지 못하는 소극적인 자세다. 대다수 유권자는 4·11 총선에서 정(正)과 사(邪)를 구별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2008년 정부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광고를 낸 적이 있다. 박근혜는 이를 들어 ‘신뢰의 정치’를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수세에 몰린 정부의 ‘감성적인’ 광고였다. 수개월 후 여야는 ‘이성(理性)’을 되찾았다. 수입 중단을 정부가 판단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든 것이다.

 박근혜는 광우병 파동의 본질을 잘 모르는 것 같다. 4년 전 그는 쇠고기 파동에 대해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과 틀린 것이다. 당시 촛불은 처음엔 ‘국민건강’이었다. 그러나 곧 미신과 선동, 반미(反美)가 섞이면서 이념 사태로 변질됐다. 미국과 같은 ‘광우병 위험 통제국’에 스위스·칠레·브라질이 있다. 그 나라의 쇠고기라면 그런 소동이 벌어졌겠는가.

 박근혜는 진실 파악 능력이 떨어지거나, 아니면 진실을 말할 용기가 부족하다. 지도자라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국민 여러분, 미국산 쇠고기 안전에 위험이 생긴 상황은 없습니다. 세계인은 차분하게 대처합니다. 우리도 정부를 믿고 지켜봅시다. 4년 전처럼 괴담이나 선동에 휩쓸려선 안 됩니다. 저는 오늘 저녁 미국 쇠고기를 먹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