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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형님?마티스의 형님?아니 ... 그 이상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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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호 14면

1 ‘빨간 조끼를 입은 소년’ (1890~95), 캔버스에 유채, 80*64㎝

‘현대 회화의 아버지’ 폴 세잔(1839~1906)의 삶은 지루할 정도로 단조로웠다. 고흐의 비극이나 피카소의 화려한 연애 같은, 예술가적 낭만 드라마 따위는 그에게는 없었다. 그는 고향 엑스 프로방스에서 은둔자가 되어 그림만 그렸다. 1895년 볼라르가 그의 첫 개인전을 열기 전까지 세상은 그를 잊었고, 그도 세상을 잊었다. 세상의 소란과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이 설정한 창작 과제에 고독하게 몰입할 수 있는 조건과 능력을 세잔은 가지고 있었다. 고독과 창조에의 몰입이 그의 전부였다.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 <36> 전영백의 『세잔의 사과』

『세잔의 사과』(한길아트, 2008년, 2만4000원)의 저자 전영백 교수가 적절히 표현했듯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사람들을 그린 인물화, 먹지 못하는 과일을 표현한 정물화, 그리고 접근할 수 없는 장면을 보여주는 풍경화”인 세잔의 그림을 이해하는 동시대인은 아주 적었다. 죽마고우인 소설가 에밀 졸라도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세잔의 그림은 그때까지의 서구 미술의 모든 관행을 의심하고, 거부하는 낯선 그림이었다. 그에게는 “병에 걸린 눈을 가진 작가” “향후 15년간 미술사에서 가장 기억되는 웃음거리로 남을 작가”라는 등 가혹한 평이 쏟아졌다.

2 ‘커튼과 정물’(1899), 캔버스에 유채, 74*54.7㎝ 사진 한길아트 제공

은둔의 화가 세잔은 사건 대신 몇몇 인상 깊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볼라르의 초상화를 그리던 중 세잔은 버럭 화를 낸다. “이 바보 같으니라고! 당신이 자세를 망쳐버렸소. 내가 당신에게 사과처럼 앉아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소? 사과가 움직이오?” 사과만도 못한 취급을 받은 불쌍한 볼라르는 115번이나 모델을 섰지만, 초상화는 결국 미완성으로 남았다. 이 에피소드는 세잔의 전형적인 작업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사과가 있는 정물화, 목욕하는 사람들, 생트 빅투아르산의 풍경화 등 몇 개의 테마를 지루할 정도로 반복해 그렸다. 마치 과학자의 실험과 같은 무수한 반복을 통해 그는 느리게 한 걸음씩 진척하면서 현대 회화로 나가는 길을 열었다.

2800억에 팔린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불친절하지만 세잔의 그림은 묘하게 아름답다. 오래 보게 만들고, 오래 보아야 보이는 그림이다. “불편하고 긴장감을 자아내는 세잔 그림의 수수께끼 같은 시각 구조에 매료”된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늘어났다. 세잔의 드라마는 죽고 나서 비로소 시작됐다. 피카소가 세잔을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칭할 정도로, 당시의 많은 젊은 작가가 그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그들은 현대미술의 아방가르드가 되어 20세기를 질주했다. 세잔 드라마의 한 꼭지점은 2012년 2월, 그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이 역대 미술품 최고가로 팔린 일이다.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이라는 테마로 세잔은 총 5점의 유화를 완성하는데, 이 중 유일하게 개인소장으로 남아 있던 한 점을 카타르 국립미술관이 구입한다. 세잔의 작품 한 점이 부여한 의미는 실로 막대했다. 이 작품 구입으로 카타르 국립미술관은 나머지 4점이 소장돼 있는 오르세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필라델피아 반스 재단, 코톨드 갤러리 등과 나란히 언급되는 자격을 갖게 되었다. 중동 작은 산유국의 신흥 미술관은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가는 입장권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 최고가 작품의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인 2억5000만 달러(약 2800억원)에 팔리면서 그동안 여러 ‘아들’들에게 양보해 왔던 최고 기록을 세잔은 단숨에 갱신했다. 당분간 깨지기 힘든 기록이다. 이런 떠들썩한 돈놀음에 세잔이 살아있다면 어떤 말을 할까? 아마 그 괴짜 화가는 “그 작품은 내 최고 작품도 아니다”라며 억만장자를 기겁시킬 말을 쏟아낼지도 모른다. 그러곤 언제나처럼 화구를 챙겨서 생트 빅투아르산을 향할 것이다. 이제는 ‘세잔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그 길을 걸어서 말이다.

2008년 발간된 전영백 교수의 책 『세잔의 사과』 역시 사후 세잔 드라마의 역동성을 잘 보여준다. 20세기 중반까지 모더니즘적인 논의는 형태론적인 분석에 집중해 세잔을 “피카소의 형님”으로 평가했다. 그 후 몇몇 학자가 형태론적 분석에 의미론적 해석을 연계해 설명하면서 세잔 색채의 의미를 재해석했다. “마티스의 형님”으로 부각된 이유다.

그러나 세잔은 그 이상이다. 세잔 회화의 핵심은 “지각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모더니즘의 틀을 넘어서는 것으로, 심리학과 역사적 인식론에 기반한 “최근의 포스트모던 이론에서도 계속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책은 크리스테바, 프로이트, 바타유, 들뢰즈, 라캉, 메를로퐁티 등 여섯 현대 사상가들의 시선으로 세잔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본다. 정신분석학자 크리스테바의 멜랑콜리아 이론으로는 무표정한 세잔 후기의 초상화들을, 프로이트의 이론으로는 “관능적이지 않은 세잔의 누드”, 특히 ‘대수욕도’들을, “배설의 철학자” 바타유의 이론으로 세잔의 초기 누드화들을 분석한다. 라캉의 이론으로는 세잔의 자화상을, 메를르퐁티의 이론으로는 세잔의 수채화를 들쳐본다.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는 세잔에게서 얻은 개념적 영감을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론에서 구체화시키는 과정이며 들뢰즈 자신의 예술론을 펼치는 계기가 됐다.

6명의 사상가들은 저마다의 이론 전개를 위해 세잔을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뜯어내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한 사상가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여섯 개의 견해로 세잔을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한다.

세잔의 회화는 마르지 않는 이론적 영감의 샘이다. 조금씩 다른 지점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잔이 지금까지의 서양미술사에서 없었던 전대미문의 것을 그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세잔의 야망은 대단했다. “산이 접히는 힘” “씨앗을 틔우는 힘” “풍경에서 열이 오르는 힘” “공기” 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려고 분투했다. 이 야망은 서구사회를 지배하던 인식론의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진정한 사건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위대한 원리를 세잔은 알고 있었다. 원근법에 입각한 근대적 자아가 포착하지 못했던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그는 원했다.

르네상스 이후 서양미술을 지배한 원근법의 원리는 이성으로 무장된 근대철학적 주체를 설정했다. 결국 이 주체는 단일 시점의 감옥에 갇혀서 세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성철의 통찰은 진실로 위대하다. 서구 철학의 주-객 대립 논리를 뛰어넘어 주·객관의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세상을 파악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잔이 그토록 그리고자 했던 것은 바로 성철의 철학이 바라본 것이었다.

원근법이 잡아내지 못한 세상을 탐구
서양미술사를 살펴보면 미술의 시각 논리 정립이 철학에 앞섰던 시대들이 있었다. 르네상스의 원근법은 데카르트의 철학에 앞섰고, 세잔은 당연히 이 6명의 사상가보다 앞서 있었다. 세잔의 회화에서 보이는 ‘지각 과정’에 관한 탐구를 철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10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잔은 자신의 과제를 풀기 위해 40년 동안 몰두했다. 현대 작가들은 2년 주기의 비엔날레, 2~3년마다 한 번씩 있는 개인전 등 현대 사회의 빠른 속도의 환경에 놓여 있다. 음반 기획이나 영화 제작의 속도와 경쟁해야 되는 것처럼 보인다. 진득해지기, 하나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매일매일의 실험을 견디어내기 -세잔의 단조로운 삶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창 밖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세잔이 그리워진다. 세잔에게는 하나의 그림만이 유일한 사건이었다. 다른 사건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축적돼 현대미술의 빅뱅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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