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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현 기자의 문학사이 ⑫ 문학 오디션 ‘K릿 스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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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손보미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문학을 숫자로 측정하면 어떨까. 문장력 85점, 상상력 90점, 주제의식 75점…. “감히 문학을 측정해?” 곳곳에서 이런 시비를 걸겠지.

 안다. 문학의 예술성이 어찌 숫자로 표시될 수 있겠는가.

 언어 예술의 특수성(혹은 전문성)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 잘 안다. 그래서 각종 문학상은 확실한 전문가의 영역이다. 몇몇 저명한 비평가나 작가 등이 땅땅 수상자를 가려준다.

 그런데 이런 문학상은 좀 따분하다. 심사위원들끼리 정해 독자에게 통보하는 식이니까.

 그리하여 상상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문학상에 아예 TV 오디션 프로그램 형식을 끌어오면 어떨까. 예컨대 심사위원이 독설도 좀 하고, 독자들이 문자투표도 하고, 점수도 매기고(제 점수는요!)….

 그래서 준비했다. 이름하여 문학 오디션 ‘K릿(lit) 스타’.

 무대는 ‘2012 젊은작가상’. 젊은작가상은 등단 10년 미만 작가에게 주어지는 상이다(주의. 아래는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의 실제 수상 결과와 심사평에 기초한 것임).

 톱7은 이미 가려졌다.

 소설가 김미월·황정은·김이설·정소현·김성중·이영훈·손보미. 일단 톱7은 모두 젊은작가상을 받는다. 남은 건 대상. 독자 반응 등을 고려해 (문학사이 임의로) 톱3를 추렸다. 접전 끝에 올라온 톱3가 심사위원 앞에 섰다. 심사위원은 평론가 김화영·남진우·신형철, 소설가 은희경·이혜경이다.

 1번 김성중(국경시장). 기억을 팔아야 화폐(물고기 비늘)를 얻을 수 있는 어느 야시장의 기묘한 이야기. 신형철 심사위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 작가에게 이야기를 설계하는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겁니다.”(문학사이 점수는요, 93점)

 2번 손보미(폭우). 사고로 시력을 잃은 남편과 교양인을 꿈꾸는 아내, 그리고 어느 교수 부부가 오해로 얽히게 되는 이야기. 이번에는 은희경 심사위원이 나섰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데도 낯설고 긴장감을 조성하네요.”(문학사이 점수는요, 88점)

 3번 정소현(너를 닮은 사람). 성공한 여성화가가 지우고 싶은 과거(너)와 충돌하는 이야기. 남진우 심사위원이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한 인간의 죄의식을 끈질기게 파고드는 이런 집중력은 우리 문학에선 흔치 않습니다.”(용서의 관계가 뒤집히는 아이러니! 문학사이 점수는요, 99점!)

 문학사이는 3번의 손을 들었으나, 예상은 빗나갔다.

 실제로는 손보미가 대상을 받았다. 심사위원 5명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면서, 이런 독서법의 효용성을 주장하려 한다.

 문학작품을 읽을 때 한번 점수를 매겨보시라. 읽는 즐거움도 커질뿐더러, 작품을 분별하는 눈도 밝아질 것이다. 여기는 K릿 스타, 한국문단을 뒤흔들 단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제 점수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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