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름값, 해답 찾기 어려운 건 알지만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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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호 02면

‘100일 연속 기름값 인상’이라는 달갑잖은 신기록에 민심이 사나워지자 정부가 다시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시장과 여론의 반응은 기대 이하다. 경제장관들이 19일 내놓은 ‘범정부 종합유가대책’을 보자. SK에너지·GS칼텍스 등 정유 4사 과점시장에 삼성토탈이라는 새로운 경쟁자를 참입(參入)시켜 가격 경쟁을 북돋겠다는 것이 골자다.

지난해 이맘때쯤의 기억이 새롭다. 정부가 정유사들의 기름값을 한시적으로 L당 100원 내리도록 종용한 ‘사회주의적’ 방식보다 이번 것이 시장원리에는 충실하지만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 의문스럽다. 정부는 이미 시행 중인 알뜰주유소나 전자상거래 시장, 혼합석유 판매제도에도 힘을 더 쏟겠다고 한다. 이것들 역시 금세 효과를 내긴 힘들다. 서민과 영세사업자들은 다락같이 오르는 기름값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정유업계에 대한 불신과 피해의식도 뿌리 깊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재빨리 소비자가격을 올린 반면 국제시세가 내릴 땐 더디게 내리곤 하던 기름값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업계는 업계대로 환율변수 등을 이유로 대며 억울해한다. 업계가 ‘통큰 할인’이라도 해 주면 모를까 현실적으로 기름값을 내릴 묘책이 안 보인다.

그러면서 시선은 기름값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유류세 인하로 옮겨 가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도 난색을 표한다. 20조원 안팎의 세금이 걷히는데 그걸 손댔다간 곤경에 빠질 수 있어서다. 그럴수록 대국민 설득에 힘써야 한다. 세금 인하 혜택이 중·대형 승용차에 집중된다는 점도 있을 것이고, 에너지 절약심리를 해칠 수 있다는 논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발등의 불도 꺼야 한다. 유가가 더 오르면 소형차나 서민에게 선택적으로 유류세를 환급하거나 생계형 차량 운전자에게 바우처 형태로 직접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나라보다 유가 안정을 기하는 일본 내수시장을 연구할 필요도 있다.

시야를 더 넓히면 만성 고유가 시대에 맞는 수요관리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 고유가에 대한 내성을 키우고 오래 버틸 수 있는 에너지 소비체질을 길러 나가야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강조하듯 고효율 대체에너지 개발도 병행해야 한다. 모두 1∼2년 안에 될 일이 아닌 만큼 인내를 갖고 꾸준히 노력할 사안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씀’ 할 때마다 굵직한 기름값 대책이 나오는 어색한 모습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에도 “기름값이 묘하다”는 대통령의 발언 이후 당국의 정유사 압박이 시작됐다. 최근 물가관계장관회의 때도 “혹시 과점체제에 문제…”라는 대통령의 지적 이후 일주일도 안 돼 급조 흔적이 역력한 대책이 나왔다. 정부가 한사코 반대해 온 유류세 인하도 그러지 않겠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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