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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국회의 과제-개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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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건국 후 우리나라가 광범위한 제도개혁을 단행했던 것은 1960년대 초·중반이었다고 볼 수 있다. 수출과 산업발전 지원을 위해 환율, 금융, 산업, 무역제도, 정부조직에 광범위한 제도적 개편이 이루어졌다. 정책수립과 행정관리 방식도 달라졌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은 이후 경제도약의 발판이 되었다. 한국 경제발전을 비교적 관점에서 연구한 해외학자들은 1960년대 한국이 이러한 광범위한 제도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던 주요인으로 당시의 균등한 소득분배와 기득권 집단의 부재를 들었다. 개혁의 저항세력이 약했다는 것이다. 일제 때 무너지기 시작한 지주계급이 해방 후 토지개혁으로 거의 몰락했고 그나마 좀 쌓여있던 부와 산업기반도 6·25전쟁으로 거의 파괴되었다. 전후 인도나 남미국가들에서는 소득불균등으로 인해 분배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강했던 데 반해 당시 한국은 정부의 막대한 산업 지원에 의한 개발정책을 과감히 추진할 수 있었다.

 산업화에 성공하고 민주화를 이루어낸 1980년대 말 이후 이러한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재벌들은 이미 산업과 시장을 장악했고 노조가 힘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 시기 세계는 규제완화, 개방화, 세계화로 내달리고 있었던 데 반해 국내에서는 기득권 세력에 정치와 정책이 휘둘리면서 대내외 환경 변화에 따른 적절한 제도개편을 이뤄내지 못했다. 그 결과 1997년 외환위기를 맞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외세에 의한 구조조정과 제도개혁을 하게 되었다. 내생적 개혁이 아니었기에 이것이 반드시 우리에게 맞는 개혁이었는지에 대한 논의도 충분히 이뤄질 수 없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소득분배와 각종 사회지표는 빠르게 악화되어 왔고, 반면 5대 재벌의 시장지배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지금 이 시대는 다시 광범위한 정책적·제도적 개혁을 우리 사회에 요구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시장경제, 자본주의, 국가의 역할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과 요구가 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은 엄청난 사회적 저항과 갈등을 수반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이뤄내지 못하면 내부 갈등은 더욱 깊어져 위기로 폭발할 수도 있다. 결국 인간사회의 근본적 과제인 ‘생산과 분배’에 관한 제도를 어떻게 이 시대적 상황과 요구에 맞게 재편해 내느냐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시장의 힘은 늘 집중화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경제적 힘의 집중문제를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국가와 정치가 이에 맞서 견제함으로써 공정한 시장과 사회를 건설하려 애썼다. 셔먼 법이라고 불리는 반(反)트러스트 법이 1890년 제정되었고, 1914년에는 클레이튼 법이 제정되어 독과점방지가 더욱 강화되었다. 이에 따라 록펠러가(家)가 소유·지배하던 스탠더드 석유회사가 해체되기도 했다. 대공황 이후에는 글래스-스티걸 법을 제정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시켰고 금융규제가 대폭 강화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월가의 대형 금융기관들에 정치와 정책이 포획되어 단견적 규제완화가 진행됨으로써 2008년 금융위기가 초래되었다고 많은 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산업화 50년, 민주화 25년을 지나오면서 지금 한국 사회는 또 한번의 광범위한 정책적·제도적 개혁을 필요로 하고 있다. 양극화, 빈곤층의 확대, 고령화의 빠른 진행, 금융안정의 불확실성, 계층의 고착화 등 우리 사회의 안정적 발전을 위협하는 문제들이 점점 심각하게 부상해왔다. 국가경쟁력을 해치지 않으면서 이들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무거운 과제를 우리 사회는 안고 있다. 여야는 이번 총선에서 경쟁적으로 복지확대를 약속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한 복지확대보다 더 근본적인 제도개편을 필요로 한다. 재정지출에만 의존하는 복지확대는 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과 근로윤리를 해치고 미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시장지배력, 조직력, 기득권에 의해 왜곡된 우리 사회의 보상체계를 바로잡아 주는 것이 시혜적 복지지출의 확대보다 이 문제들에 접근하는 더 효율적이며 근본적인 대책이다. 또한 그것이 여야가 내세운 경제민주화의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상황에서 이러한 개혁은 강력한 국가의 힘을 필요로 한다. 민주화 이후 재벌·노조 등 시장권력은 더욱 집중, 강화되어온 반면 국가 권력은 상대적으로 분산, 약화되어 왔다. 국가 지배구조의 개선 없이 한국 사회는 지금 이러한 막중한 과제들을 내부적 개혁을 통해 돌파해 나가기 어렵다. 18대 국회에서의 개헌 논의는 흐지부지돼 버렸다. 19대 국회는 다를 것인가? 개원 후 곧바로 대통령중임제를 포함한 개헌을 합의한 후 12월 대선을 치르길 기대해 본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